사망자 1만3500명, 부상자 4만명, 피난민 500만명, 영양실조 아동과 임산부 450만명, 콜레라 창궐과 극심한 기근….

1월 말 유엔의 한 보고서가 "현시대 인간이 빚은 최악의 재앙"이라고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내전 개입이 25일로 만 3년을 맞는다.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2014년 예멘의 수도 사나를 점령하고 수니파 정권을 무너뜨리자, 사우디는 2015년 3월 UAE·카타르·이집트·요르단 등 중동의 이슬람 수니파 10개국으로 연합군을 구성해 예멘 내전에 뛰어들었다. 현재 인구 2700여만명의 예멘은 육·해·공 모두 봉쇄됐고, 유엔과 유럽연합(EU) 의회에선 '분쟁 종식'과 '대(對)사우디 무기 수출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문이 거듭 채택됐다.

하지만 '인도주의' 대의(大義)는 '오일 머니' 앞에서 힘을 잃었다. 주요 무기수출국들은 예멘의 병원·학교·공장·도로를 마구 파괴하는 자국산 무기의 사우디 수출을 계속 늘렸다. 일부 국가는 뒤로는 무기를 수출하면서 겉으로는 '재앙'을 염려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난 백악관 집무실에서, 전투기·탱크·요격미사일 등 사우디가 구입하는 미국산 무기 사진과 금액을 담은 차트를 들어 보였다. 그는 "사우디가 125억달러어치 무기를 구매했고 앞으로 더 할 예정"이라며 즐거워했다.

트럼프는 작년 사우디 방문 때 1000억달러 규모의 탱크·레이저 유도탄·미사일 판매를 약속했다. 같은 시각, 미 상원에선 미군이 현지에서 사우디 전투기에 공습 타깃 정보를 제공하고, 공중 급유를 하는 것을 막으려는 법안이 44대55로 부결됐다.

지난 9일 무함마드 왕세자가 런던을 방문하는 동안, 거리에선 '무기 수출 중단' '예멘 학살 금지' 등의 구호가 난무했다. 하지만 이날 영국 정부는 48대의 최신예 타이푼 전투기 판매를 승인했다. 인디펜던트 분석에 따르면, 폭탄·어뢰·미사일 등 영국의 사우디 무기 수출은 내전 개입 전에 비해 무려 5배가 뛰었다. 그런데도 작년 7월 영국 고등법원은 "이 무기들이 인도주의 관련 국제법을 어겼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기 수출을 허용했다.

세계 4위의 무기 수출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작년 말 사우디 살만 왕에게 전화해 인도주의적 재앙을 경고하며 "봉쇄를 완전히 풀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지난달 10일 "예멘 사태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느냐"며 '무기 수출 중단' 요구에는 답을 피했다. 프랑스는 작년에 30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사우디에 팔았다.

캐나다는 예멘의 참상을 덜기 위해, 지난 1년간 6500만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동시에 105㎜ 포와 대(對)전차 로켓, 900대의 장갑차량 등 모두 116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사우디에 팔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21일 "2014년 전임 정부 때 체결된 계약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모두 6600만유로어치의 탄약을 사우디에 판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작년 말 야당이 반발하자 "8년간 경제위기를 (무기 수출로) 헤쳐나가는 정부의 노력을 방해한다"고 맞섰다. 올 1월에 들어서야 독일·핀란드·노르웨이·오스트리아·벨기에 등 일부 국가가 국내 반발과 국제법 위반 주장에 밀려 사우디와 UAE 등에 무기 수출을 잠정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