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패션' 대명사 아노락, 올봄 대세 아우터로 부상
이누이트족의 방한복에서 명품으로 신분상승

모자가 달린 바람막이 재킷 ‘아노락’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동안 거리를 뜨겁게 달군 트레이닝 수트는 이제 잊자. 아노락(Anorak)이라 불리는 바람막이 재킷이 그 자리를 차지할 태세니.

촌스러운 등산복을 대표하던 아노락이 올봄 대세 아우터로 부상했다. 아노락은 모자가 달린 바람막이 재킷으로, 전면이 개방되지 않고 가슴 부위까지 열고 닫는 구조가 특징이다. 원래 북극의 에스키모인들이 입는 전통 방한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노락이라는 단어도 이누이트어 ‘아노라크(ánorâq)’에서 따왔다. 앞부분에 커다란 주머니가 달려 있어 ‘캥거루 재킷’이라고도 불린다.

◇ ‘아재 패션’ 대명사 아노락, 명품으로 신분상승

아노락은 군용 겉옷을 거쳐 등산복, 스키복 등으로 대중화됐고, 1980~90년대 스포츠 웨어의 유행과 함께 인기를 끌었다. 이후 운동선수들이나 어린이, 은퇴한 남성들이 입는 외출용 재킷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올봄 명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아노락을 쏟아냈다. 발렌시아가는 아버지의 유산처럼 보이는 빛바랜 컬러 블록(Color-Block·색들의 덩어리를 대비시킨 디자인) 아노락을, 이자벨 마랑은 1990년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문양의 아노락을 선보였다. 새로운 실험도 돋보였다. 셀린은 가죽으로 제작한 고급스러운 아노락을 선보였고, 보테가 베네타는 아노락을 짧은 원피스처럼 입고 메리제인 슈즈를 매치해 리조트 룩으로 연출했다. 해외 패션 잡지들은 ‘가죽 재킷을 대신할 외투’라며 아노락을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2018 봄/여름 패션쇼에는 아노락이 주요 아이템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노락의 신분상승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몇 년째 이어지는 청년 문화와 스트리트 감성, 복고 열풍은 추억 속 패션 아이템을 하나, 둘 소환하고 있다. 아노락 역시 1980~90년대 유산 중 하나로 선택됐다. 또 투박하고 못생긴 아웃도어 풍 패션을 즐기는 고프코어(Gorpcore) 흐름도 아노락의 등장을 재촉했다.

◇ 투박하고 못생긴 고프코어 열풍, 아노락 소환

사실 아노락은 입기 편한 옷이 아니다. 전면이 개방되지 않은 풀오버(Pullover) 형태로 머리부터 뒤집어써서 입어야 한다. 하지만 이 불편하지만 흔하지 않은 디자인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젊은 층에선 이미 2~3년 전부터 멋내기용 재킷으로 아노락이 인기다.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 아노락을 검색하면 2100개가 넘는 상품이 검색된다. 한 대학생은 “바람막이 재킷는 아저씨 같아서 독특한 디자인의 아노락이 더 좋다”라고 했다.

아노락의 흥행이 확실시되자 아노락의 ‘본진’인 아웃도어와 스포츠 브랜드도 신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관련 업계는 기능성 소재와 다양한 색감, 돌돌 말아 앞 주머니에 넣어 보관할 수 있는 초경량 등을 앞세워 경쟁에 뛰어들었다. 기존의 디자인은 유지한 채 전면 개방형으로 변형한 형태도 바람막이 집업 재킷을 대신해 등장했다.

아노락은 패니 팩, 어글리 슈즈 등과 함께 매치하면 트렌디한 고프코어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밀레는 1921년에 출시됐던 정통 아노락 재킷을 복각한 '밀레 클래식 1921 아노락'을 선보였다.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자체 개발 방풍 기능성 원단을 외피로 사용해 기능성을 강화했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는 ‘헤리티지 아노락’을 출시했다. 초경량 소재를 사용하고 휠라 로고와 동일한 남색·빨강 등 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유행으로 돌아온 아노락, 어떻게 입을까? 먼저 아노락을 고를 땐 자신의 신체보다 한 두 치수 큰 제품을 선택해 자유분방한 길거리 무드를 살려보자. 복고풍 스타일을 즐기고 싶다면 여러 색상이 배색된 컬러 블록 스타일을 선택해 볼 것. 아노락은 그 자체가 개성이 강해 청바지, 트레이닝팬츠 등과 입어도 충분하지만, 반바지, 어글리 슈즈, 패니 팩(fanny pack∙허리에 둘러매는 가방) 등과 매치하면 유행하는 고프코어 룩을 완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