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 공범으로 지목된 재수생 박모(20)양이 1심 무기징역에서 2심 징역 13년으로 감형됐다. 주범 김모(18)양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박양과 맺은 ‘주종관계’가 현실의 살인범행까지 이어졌다고는 보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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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대중)는 30일 김양에 대해 1심처럼 법정 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박양에 대해서는 살인이 아닌 살인방조 혐의를 적용해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김양은 지난해 3월 인천시 연수구 한 공원에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생 A(당시 8세)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됐다. 박양은 훼손된 A양의 시신을 건네받아 유기한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김양은 재판에서 “박양이 사람을 죽이라는 지시를 했다”, “자신에게 잔인한 인격을 만들어줬고, 그 잔혹성을 이용해 범행하게 했다”고 진술했다. 김양은 박양과 주종(主從)관계였다. SNS 등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가상 역할극을 즐기는 이른바 ‘자기 제작 캐릭터 커뮤니티(자캐)’에서다.

자캐는 커뮤니티 운영자가 영화·게임 등을 본 따 배경을 설정하면 참여자들이 대사·지문으로 사건을 채워가는 식이다. 김양은 2016년 2월부터 범행이 이뤄진 작년 3월까지 13개월 동안 12개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한다.

한때 권총 자살 10대 소녀, 때로 30대 무직 알코올 중독자였던 김양은 박양과 함께 즐긴 역할극에서는 마피아 행동대원이었다. 박양은 마피아 조직의 간부였다. 박양은 작년 2월 SNS에 자신의 캐릭터가 좋아하는 부위가 심장과 폐라며, 인육 요리를 먹이고 싶다고 적었다. 한 달 뒤 김양은 초등학생의 폐, 손가락, 허벅지를 도려내 박양에게 건넸다. 역할극 배경인 이탈리아가 아닌 현실의 대한민국 인천에서였다.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20·왼쪽)양과 김모(18)양이 30일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양은 피해자를 물색하던 김양에게 “저 중에서 한 명이 죽게 되겠네, 저학년부터 밥을 먹고서 집에 간다”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양이 유괴된 뒤에는 ‘살아있어?’, ‘손가락 예뻐?’등을 물었다. A양이 살해된 뒤 박양은 사체 일부를 건네받아 확인하고도 따로 의문을 제기하거나 하지 않았다.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김양을 두고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거나, 이후 넘겨받은 사체는 추가 훼손해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두고 검찰이나 1심은 평소 살인, 사체 해부 등 공통 관심을 계기로 친분을 쌓아 온 김양이 박양이 원하던 신체 부위를 손에 넣기 위해 함께 계획한 범행이라고 봤다. 2심은 그러나 박양이 김양의 살인범행을 알았거나 이를 방조한 정황은 될 수 있어도, 두 사람이 범행을 함께 계획하고 이를 박양이 지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평소 두 사람의 대화나 행동에 비춰 김양이 박양에게 지시를 받거나 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다”고 했다. 범행 이전의 대화들은 박양이 ‘역할극’을 전제삼아 김양의 ‘대사’에 호응해주는 수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박양의 지시가 김양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정도의 것이었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게 경험칙에 부합한다”면서 “둘 사이에 구체적인 범행 내용이나 시기, 방법, 대상을 공모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2심은 김양이 재판에서 펼친 주장들이 ‘믿을 게 못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양은 박양의 가담 여부에 따라 자신의 형이 감형될 여지가 있는 이해관계를 갖는다”면서 “진술이 일관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고 했다. 본인 유불리를 따져 진술 내용을 부풀리거나 제대로 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양 측이 1심부터 이어 온 “자폐성 장애인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disorder)을 앓아 정상적으로 사리 분별을 하기 힘든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대인관계에서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관심 분야가 한정되는 특징을 보이는 정신과 질환의 하나다. 언어 능력 발달이 더딘 자폐증과는 달리 말을 부풀리거나 돌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재판부는 “김양이 설령 범행 당시 증후군을 앓았다 하더라도 이는 사회와의 교류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나타낼 뿐”이라며 “생명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사회규범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하거나, 범죄를 저지를 개연성 등을 짐작할 수 있는 지표는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