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터빈 홀을 개조한 현대미술관의 아이콘
데미안 허스트 상어, 해골 작품 전시… 자코메티 등 현대미술 상설전 열어
런던은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왕조의 수도로서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유럽 최고의 중심 도시다. 빅토리아 왕조의 ‘미술 & 공예(Arts & Crafts) 운동’에서부터 현대미술, 현대건축, 대중음악 등의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낭만이 가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테이트 모던으로 달려갔다. 2000년에 개관한 테이트 모던은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 갤러리와 함께 테이트 갤러리 네트워크에 속한 미술관이다. 2016년 새롭게 오픈한 신관은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설계를 맡았다. 옛 구관 건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오로지 블록을 쌓아 올린 테이트 모던의 신관은 마름모 형태의 건물이다.
◇ 폐쇄된 발전소를 현대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내부로 들어서니 자연 친화적이며 구관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출 콘크리트와 까만 스틸을 이용한 건축가의 의도가 이곳저곳에서 엿보였다. 하지만 신관에 가려져 위압적인 터빈 건물의 위용을 테이트 모던 입구에서 조망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웠다. 대신 그 자리에는 헤르조그 & 드 뫼롱 특유의 뒤틀린 형상의 테이트 모던 신관이 반겨주었다.
자코메티 특별전을 보기 위해 구관으로 이동했다. 구관 터빈 홀(발전실)의 높은 천장과 2층, 3층의 전시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수평의 긴 우윳빛 유리 상자의 공간과 어우러진 터빈 홀은 테이트 모던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요, 희열이었다.
테이트 모던 구관의 확장 설계는 독특하다. 1981년에 문을 닫은 뱅크사이드(Bankside)의 발전소를 헤르조그 & 드 뫼 롱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개조한 것이다.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만을 전시하는 이 공간은 세계 현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픈 선망의 장소 1순위로 꼽힌다.
건물 외벽이 벽돌로 이루어진 7층 높이의 직육면체 외관은 현대미술관 건축물이라고 부르기에는 평범했다. 외부에서 보면 단순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예상치 못했던 높고 긴 어두운 공간이 펼쳐진다. 높이 35m, 길이 152m에 달하는 터빈 홀은 입구 로비와 전시 장소로 개조됐고, 보일러 하우스는 전시 공간이 되었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발전소용 굴뚝은 테이트 모던의 상징으로, 반투명 패널을 사용해 밤이 되면 등대처럼 빛을 비추게 개조했다.
◇ 자코메티, 데미안 허스트 등 특별전 돋보여
마침 테이트 모던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특별 회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번 회고전의 하이라이트는 데미안 허스트의 최근 작업이랄 수 있는 해골 작품이었다. 백금으로 주형을 뜬 실물 크기의 두개골에 총 1106.18캐럿의 다이아몬드 8601개가 촘촘히 박힌 작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숱한 화제를 뿌렸던 이 작품은 아스텍 유물인 두개골에서 영감을 받아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갖게 됐다. 제작비용으로만 2000만~3000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한다.
2012년 방문 때 보았던 현대미술의 전설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가 떠올랐다. 수많은 화제를 뿌렸던 파란 유리 상자 속에 갇힌 ‘상어’는 충격적이었다. 상어의 껍질을 벗기고 방부액 속에 넣어 작품화한 ‘상어’가 1991년에 처음 공개됐을 때, 현대 미술계에서는 끔찍하고 엽기적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작가 자신도 가장 추악하고 끔찍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고, 작품 제목 역시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상어’는 당시 세기적인 컬렉터인 찰스 사치에게 5만 파운드(약 1억 원)에 팔렸고, 2005년에 컬렉터 스티브 코헨에게 127억 원에 팔렸다. 그 후 2008년 옥션에서 1억1100만 파운드(약 1879억 원)에 팔리면서 또 한 번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3층, 4층의 상설 전시를 감상하던 중 단색화 작가 하종현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테이트 모던에서 단색화의 대표 주자 하종현 작품을 대하니 너무 자랑스러웠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백남준을 비롯해 요즘 단색화 붐으로 급부상한 이우환, 박서보. 정창섭. 정상화 등 한국 원로 작가들의 소장품을 마주할 때마다 감동해 그들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멈추었다. 자코메티 회고전을 비롯해 현대미술 상설전이 열리는 전시실 곳곳마다 관람객들의 행렬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마도 영국인들에게 미술관 방문은 몸에 젖은 문화이고 일상이며 쉼이리라.
◆ ‘미술품보다 미술관을 더 좋아하는’ 사진작가 고영애. 그는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왔다.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은 작가 고영애가 15년간 지구 한 바퀴를 돌 듯 북미에서 남미로,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옮겨가면서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매혹적인 현대미술관 60곳을 기록한 미술관 기행서다.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만든 테이트 모던부터 12개의 돛을 형상화한 최첨단 건축물인 루이비통 파운데이션까지, 책에 게재된 60곳 모두 건축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장소지만, 그중 하이라이트 20곳을 엄선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