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부 저장성에는 첸다오후(千島湖)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차디찬 수온에 수심 7m 아래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1급의 수질과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이 송로버섯, 푸아그라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불리는 캐비아의 세계 최대 생산지라는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첸다오후에서 양식되고 있는 철갑상어에서 나오는 캐비아는 세계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 g당 가격은 같은 무게 금값의 절반이 넘는다.
세계 최악의 '가짜 식품 대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중국이 이제 '황제 푸드'라 불리는 최고급 식재 분야에서도 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캐비아 메이커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푸아그라의 3대 생산국이기도 하다. 중국의 남부에서는 송로버섯 중 가장 귀하다는 흑송로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캐비아 생산 기지 첸다오후
573㎢의 거대한 면적을 자랑하는 첸다오후에서 철갑상어 양식이 시작된 것은 2003년. 중국 과학원 산하 수산과학원에서 철갑상어 양식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캐비아 국산화'라는 목표를 갖고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회사 이름은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서식하는 철갑상어 품종인 칼루가를 따서, '칼루가 퀸'으로 지었다.
이 회사는 설립 12년 만인 지난 2015년 한 해 45t의 캐비아를 생산해 기존 1위였던 이탈리아의 아그로이티카 롬바르다 SpA를 제치고 세계 1위 캐비아 메이커에 등극했다. 생산량이 해마다 늘면서 지난해에는 70t의 캐비아를 생산, 연간 200t 수준의 전 세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곳에서 7~15년을 자란 성체 철갑상어에서 나오는 알은 몸무게의 10~12%에 이른다. 이 알로 만드는 캐비아는 g당 가격이 180위안(약 3만원)이다. 캐비아가 '블랙 골드'로 불리는 이유다.
중국 영자 차이나데일리는 "이 회사가 만드는 캐비아는 '차이나 디스카운트'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럽 최고의 항공사 독일 루프트한자의 1등석용으로 공급되고 있고 미식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 있는 '미쉐린 별 셋' 레스토랑 28곳 중 22곳이 이 회사 캐비아를 쓰고 있다. 이 회사의 캐비아는 2016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상들의 만찬 식탁에도 올랐다. 캐비아의 원조국을 자부하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이 회사 제품을 즐겼다는 게 이 회사의 자랑이다.
◇중국 철갑상어 양식시대 선두로 등극
캐비아의 원산지는 옛 소련의 카스피해였다. 1970년대 후반 이곳을 중심으로 한 캐비아 생산량은 한때 2000t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전 세계 캐비아 생산량이 현재와 같은 200t 수준으로 뚝 떨어진 건 1991년 소련 붕괴 이후다. 자연산 철갑상어의 남획을 금지하고 캐비아 채취를 엄격히 관리하던 소련의 시스템이 함께 붕괴하면서 불법 남획으로 철갑상어 씨가 마른 것이다. 그 결과 2000년 이후 다수의 철갑상어 품종들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어획이 금지됐다. 자연산 철갑상어가 줄어들자 세계 각국은 인공수정을 통한 철갑상어 양식에 뛰어들었다.
수산 양식 연구자들이 모여 2003년 설립한 칼루가 퀸은 2006년 첫 캐비아를 내놨다. 덕분에 중국도 캐비아 생산국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하지만 '식품 안전 후진국'이라는 중국의 이미지는 '중국산 캐비아'의 세계시장 진출에 크나큰 장벽이었다. 이 회사의 캐비아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캐비아 캔 뚜껑을 열어보지도 않고 구매 상담을 끝내는 서구 고객들이 수두룩했다. 그들이 국제적인 캐비아 블라인드 시식회를 수차례 석권하자, 중국산 캐비아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결국 2011년 루프트한자 1등석을 뚫은 뒤부터 일사천리로 해외 고급 레스토랑과 대형 호텔 체인으로 공급처를 늘렸다.
2012년부터 중국 내 소비도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바람이 몰아치면서, 캐비아 소비 역시 된서리를 맞았다. 공무원 사회에서 접대용 회식과 고급 선물이 금지되면서 캐비아의 '캐'자도 입 밖에 못 내는 분위기가 됐다. 꽁꽁 얼어붙었던 국내 수요는 2016년부터 늘고 있다. 특히 미쉐린이 중국에서도 별점 평가를 시작하며 미쉐린의 별을 단 레스토랑들이 등장하면서 캐비아 소비가 연 50% 이상 폭증하고 있다.
현재 캐비아의 90%를 유럽, 중동,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칼루가 퀸은 앞으로 5~10년 안에 전체 매출 구성이 극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중국이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철갑상어연합회는 2020년 중국의 캐비아 소비는 한 해 100t에 이르러 전 세계 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푸아그라·송로버섯·고급 치즈 생산량도 급증
중국은 세계 3위의 푸아그라 생산국이다. 한 해 2만여t이 생산되는 전 세계 푸아그라 중 80% 이상이 프랑스제다. 그런데 중국이 프랑스의 푸아그라 제조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 국내 푸아그라 소비량의 15% 이상을 공급하는 유랄리스가 중국을 해외 생산 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유랄리스는 2007년 중국에 진출, 베이징에 대규모 푸아그라 생산 농장을 건설했다. 급증하는 중국 내 수요를 보고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이 농장이 2011년 폭설로 무너지자 유랄리스는 2014년 저장성의 롄윈강에 1800만달러를 들여, 대규모 푸아그라 생산 공장을 다시 지었다. 이 농장의 거위 사육 규모는 오는 2020년 100만 마리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서 나오는 푸아그라는 대부분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판매될 전망이다. 중국 내 푸아그라 소비가 그만큼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0여종의 버섯이 생산되는 천혜의 버섯 산지인 중국 남부 윈난에서는 매년 200t의 흑송로 버섯이 해외로 수출된다. 가격은 ㎏당 최고 1300위안(약 22만원) 수준이다. 세계 최고로 쳐주는 프랑스산에 비하면 아직은 염가 수준이다. 송로가 충분히 자랄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서둘러 수확하는 현지 농부들의 관행 때문에 제값을 못 받고 있는 것이다. 최고급 대접은 아직 못 받지만 가격 경쟁력 덕분에 프랑스산 흑송로를 쓰지 못하는 해외 레스토랑 사이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우유로 만든 중국산 아티산 치즈도 프랑스 대사관에 공급될 만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의 동북 지린성 백두산 인근 고원에서 자라는 톈이강산 흑우는 '중국판 와규'로 불린다. 톈이강산 흑우 스테이크는 1인분에 1000위안(약 17만원)으로, 프리미엄 스테이크 시장에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