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라이프가 바뀐다 ③]
옷을 스타일링 하듯, 집 단장하는 홈퍼니싱 족 확산
소확행, 케렌시아 등 일상에 집중하는 태도 반영

패션과 미식에 대한 관심이 주거 생활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가 자사의 홈 패브릭으로 만든 슈트.

직장인 박지은(34) 씨는 주말마다 생활용품 매장에 간다.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식기 등을 골라 집안을 꾸미는 게 그의 취미. 지난 주말엔 침대 위에 까는 타퍼와 침대보를 장만했다. “퇴근 후 집에서 뒹구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집 꾸미기는 그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투자죠.”

대학원생 이종현(28) 씨는 “남자 혼자 살면 홀아비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집을 생각하는데, 의외로 집안을 꾸미는 남자가 많다”며,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에 최대한 쾌적한 분위기에서 살려고 한다”고 했다.

◇ ‘내 쉴 곳’ 내가 직접 꾸민다, 홈퍼니싱 족 확산

결혼 3년 차인 정원준(37)·이민지(32) 부부는 최근 무인양품에서 테이블과 소파를 150여 만원을 주고 샀다. “더 저렴하고 튼튼한 가구 전문 브랜드도 있지만, 이 브랜드의 단순하고 절제된 디자인이 저희 스타일과 맞다고 생각했어요. 침구류와 수납 용품 등 작은 소품부터 시작해 가구까지 장만하게 됐죠.”

프리랜서 삽화가 유진영(33) 씨는 자신의 원룸을 카페 콘셉트로 꾸몄다. 식탁 겸 책상으로 쓰는 테이블에 철제, 플라스틱, 가죽 등 각기 다른 성질의 의자를 배치하고, 은은한 조명과 반려식물을 뒀다. 그는 “재택근무를 하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에 신경을 쓴다. 원래 갖고 있던 의자에 새 의자 2개를 더했는데, 공간이 확 달라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인스타그램에서 #집스타그램을 검색하면 205만 개 이상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직장인 김이현(35) 씨는 틈만 나면 인스타그램 속 ‘남의 집’을 구경한다. 그는 “국내의 아파트 인테리어는 스타일이 한정됐지만, 해외 인테리어는 볼거리가 다양하다. 최근엔 북유럽 가정의 인테리어를 보고 베란다에 작은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김 씨는 자신의 새로운 공간을 찍어 자신의 SNS에 게재했다.

패션과 미식에 대한 관심이 주거 생활로 이동하고 있다. 리빙은 그동안 주부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이제는 20~30대 젊은 층이 주축이 되고 있다. 최근엔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면서 남성들도 동참하는 추세다.

옷 갈아입듯, 취향대로 꾸미고 자랑하는 내 집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앞두고 ‘삶의 질’에 중점을 둔 소비가 증가한다. 일본의 경우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1992년부터 10여 년간 인테리어 산업이 두 자릿수 성장했고, 한국도 최근 홈퍼니싱(Home Furnishing·집 꾸미기) 시장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홈퍼니싱 시장은 2015년 12조5000억 원 규모에서 2023년에는 18조 원까지 불어날 거로 보인다.

원룸 오피스텔에 적합한 수납 용품을 선보이는 스타필드 고양점 ‘라이프 컨테이너’

특히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작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 케렌시아(querencia·나만의 휴식 장소) 등 일상에 집중하는 태도가 부상하면서 홈퍼니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생활용품 부문 매출이 2013년 이후 매년 10% 이상 신장했지만, 전통적으로 매출을 견인했던 패션 부문 매출은 성장이 주춤했다.

‘집 꾸미기=여자’라는 공식을 깨고, 집 꾸미는 남성들도 등장했다. 주도적으로 인테리어와 가전제품을 구매한다고 해 ‘멘즈테리어(mensterior·남성을 뜻하는 'men'과 인테리어 'interior’를 합친 단어)라는 신조어도 붙었다. 현대백화점이 가전제품 구매자를 조사한 결과 2015년 20~30대 남성의 매출 비중은 전체의 1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24.6%로 급증했다.

온라인 유통업계도 마찬가지. G마켓에 따르면 올 1월 1일~4월 22일 인테리어 관련 상품 남성 구매율은 2015년보다 75% 상승했다. 온라인 인테리어 DIY 전문 사이트 '손잡이닷컴'에서도 지난해 남성 회원이 전년 대비 2배 정도 늘었다.

무인양품은 자사의 가구와 소품으로 채운 무지 호텔을 중국 심천에 열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예전에는 신혼부부들이 한 브랜드에서 가구를 세트로 구매했지만, 요즘엔 취향에 맞춰 각기 다른 브랜드에서 구매하는 패턴이 보인다. 특히 젊은 고객들은 식탁 의자나 소파를 다른 디자인으로 구매해 매치할 만큼 감각이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 무인양품 호텔, 이케아 슈트… 패션 침범하는 리빙 브랜드들

추세를 반영한 것일까? 요즘 리빙 브랜드들은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독특한 전략을 펼친다. 무인양품은 지난 3월 중국 심천에 호텔을 열었다. 무인양품의 가구와 소품만으로 구성한 호텔로,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한다.

이케아와 스탬피디가 협업한 ‘SPANST‘ 컬렉션, 길거리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고객을 공략한다.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패션과 리빙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 4월 소파와 쿠션에 사용되는 원단으로 슈트를 제작한 데 이어, 최근엔 미국 LA의 스트리트 브랜드 스탬피디와 협업 상품을 내놨다. 스케이트보드를 보관하는 선반과 투명 운동화장, 농구대와 의류 등 길거리 감성이 물씬 풍긴다. 어쩌면, 일상의 행복에 집중하는 홈퍼니싱족에겐 이케아 슈트를 입고, 무지 호텔에 가는 게 세련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