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훈 센 총리는 1985년부터 34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다. 그는 작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자신도 트럼프 대통령처럼 '가짜 뉴스'와 싸우며 반(反)정부 성향의 라디오 방송국들과 신문을 폐쇄했다고 자랑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훈 센 총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훈 센 총리는 "당신 나라의 (인권)정책이 변했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작년 11월 1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정상회의 창설 50주년 기념 만찬에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대화 중에 활짝 웃고 있다.

트럼프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게도 "마약 문제에서 믿기 어려운 일을 해낸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두테르테는 그때까지 1만2000여 명을 처형해 국제사회에서 인권유린 비판을 사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5월 "히틀러가 300만명의 유대인을 죽였듯이, 나는 300만명의 마약사범을 기쁘게 학살하겠다"는 두테르테를 초청했을 때도 미국 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국가 정상이 아니었다면 미국 실정법에 따라 인권유린 혐의로 입국이 금지됐을 인물"이라고 했다. 두테르테는 두 달 뒤 "미국은 가봤는데 엉망(lousy)"이라며 초청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뛰어난 협상가" "주민들과 나라를 사랑한다"고 찬사를 보낸 것을 놓고 미국 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김정은뿐 아니라 각국 독재자들에게 유별난 애정을 보여왔다. 미국 외교의 전통적인 한 축인 인권은 따지지 않았다. 작년 2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푸틴은 살인자"라고 하자, 트럼트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결백한 것 같소? 난 푸틴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이 재선(再選)에 성공하자 서방 지도자로선 처음으로 축하 전화를 했다. 그가 푸틴과 전화 통화를 할 때 백악관 참모들이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메모까지 주었으나 무시했다. 당시 서방국가들은 러시아 전직 스파이에 대한 영국 내 암살 시도 사건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일제히 비난했으나 그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2016년 대선 유세 중에는 "푸틴이 우리 대통령(오바마)보다 훨씬 나은 지도자"라고 말했다.

트럼프 백악관의 한 참모는 작년 3월 WP에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푸틴 대통령"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모두 독재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작년 4월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개헌 국민투표에서 이기자, 제일 먼저 전화한 서방 정상도 트럼프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반정부 인사와 이슬람주의자들을 잔혹하게 억압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선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멋지게 일을 했다"고 칭찬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간의 이견(異見)도 허용하지 않는 지도자에게 '진정한 친근감'을 보이는 듯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12일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캐나다 총리에게 "매우 부정직하고 약해빠졌다"고 말한 직후 지구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 명인 김정은과 만나고 "궁합이 잘 맞는다(a great chemistry)"를 얘기한 것이 더욱 놀랍다고 평했다.

트럼프의 이런 독재자 사랑에 대해 뉴욕대의 루스 벤-기야트 교수는 "독재자들의 선동적인 스타일이 본인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벤-기야트 교수는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나'이며 '본능대로 행동하면 되고 전문가들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 이런 독재자들의 특징적인 행동"이라고 했다.

NYT도 "트럼프는 스스로 '강력한 지도자'라고 생각해 과장된 존경심과 아부의 말, 거창한 겉치레를 좋아하고 자신도 이 방식으로 김정은과 푸틴을 대한다"면서 "결코 외교적 술수만은 아니며 권력 장악을 위해 잔악한 통치를 하는 독재자들을 더 존중한다"고 분석했다. 서방의 민주적 지도자들보다 이런 독재자들을 만나면 더욱 자신감이 넘치고 '덜 방어적'이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김정은에 대해 "26세에 정권을 잡아서 나라를 거칠게 운영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매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호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평가라고 NYT는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