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 옆에 성당보다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다. 벽돌과 나무로 지은 2층 건물로 명동성당보다 8년 앞선 1890년 세워졌다. 이곳은 지난 130년간 용도와 구조가 계속 변했다. 처음에는 주교 숙소, 응접실, 식당 등이 있는 주교관이었다. 1960년대에 가톨릭의대 강의실, 70년대에는 가톨릭출판사가 있었고 80년대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무실 건물이 됐다. 2014년 서울대교구 사무실이 새 건물로 옮기고 나서 비어 있다가 지난 25일 새 단장을 마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이 됐다.
건물 외관은 따로 손대지 않았는데도 멀끔하다. 건물 내부는 130년 전으로 복원된 부분도 있고, 바뀐 모습이 유지된 부분도 있다. 새 단장을 맡은 이는 건축가 김대균(43)씨다. 그는 양구백자박물관, 고령성당, 소록도 작은미술관 등을 설계했다.
26일 전시관에서 만난 김씨는 "무엇을 복원하고 무엇을 그대로 둘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건물의 용도가 많이 바뀐 만큼 여러 번 공사가 있었다. 전체적 모습은 1890년 원형에 가깝게 되돌리되 그간의 흔적을 곳곳에 남겨두는 방식을 택했다. "130년 전 모습뿐 아니라 50년 전 모습에도 나름의 역사적 의미가 있으니까요.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과 그동안 변해온 흔적을 남기는 것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 했습니다."
우선 1950년대와 70년대에 내벽과 창틀에 여러 겹 발린 시멘트를 뜯어내 벽돌 벽으로 되돌렸다. 그러면서도 건물 구석에 시멘트 미장을 조금 남겼다. 출판사가 들어왔을 때 한쪽 발코니를 실내로 만드는 공사를 했는데, 그 부분도 그대로 뒀다.
발코니에는 울퉁불퉁한 옛날 벽돌 사이에 매끈한 새 벽돌이 충치 때우듯 군데군데 들어가 있다. 배관을 위해 벽돌을 조금 깨뜨린 부분, 환풍 시설이 없던 때 환기를 위해 벽돌 몇 개를 비워둔 부분, 나무 천장이 썩지 않도록 타르를 바른 부분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씨는 "건물에 관해 정리된 기록이 많지 않아 온갖 자료를 뒤지며 내부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당시 신문에 실렸던 주교 인터뷰 기사를 찾아 주교가 자던 방과 매일 아침 미사 드리던 곳의 위치를 찾았다. 새로 만든 주출입문은 옛 출입문 사진을 보고 본떠 만들었다. 김씨는 "잘하는 건축가보다 노력하는 건축가로서 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래 종교가 없지만 공사하는 동안에는 명동성당에서 매일같이 기도했어요. 그만큼 간절했죠.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든 부분이 없다고 자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