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이 올해 초 미국 시애틀 본사 옆에 지은 업무 공간 ‘더 스피어스’. 유명 건축회사 NBBJ가 설계한 이 건물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이름을 따 ‘베이조스의 공들(Bezos’Balls)’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맨 오른쪽 건물에 있는 작은 전시실 ‘언더스토리(Understory)’는 매일 열려 있고 그 외 공간은 매달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 예약자에 한해 개방된다.

미국 시애틀에는 스타벅스 1호점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에서 정작 주인공들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곳은 시애틀이 아닌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런 걸 보면 '그저 날씨만 우중충하고 볼 것 없는 도시인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시애틀에는 도심부터 근교까지 볼거리가 꽤 많다. IT 기업들의 본사와 100년 넘은 재래시장, 대중문화의 전당, 광활한 대자연이 모두 지척에 있는 곳, 시애틀에선 불면의 밤이 기다린다.

재래시장과 미술관

해안가에 있는 재래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시애틀 여행의 중심지다. 1907년 문을 열어 짧은 미국 역사 속에서 100년의 역사를 훌쩍 넘긴 곳이다. 시장 복판 '공공 시장 센터(Public Market Center)'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라고 쓰인 낡고 큼지막한 간판이 있다. 죽 늘어선 생선, 과일을 구경하거나 빵 같은 주전부리를 사먹을 수도 있다.

이 시장에 시애틀의 상징처럼 된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 따로 지도를 보거나 행인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유독 길게 늘어선 줄이 간판보다 더 눈에 띈다. 벽 전체에 씹다 만 껌이 가득 붙어 있는 '껌 벽(Gum Wall)'도 명물이다. 인근 영화관에 줄 선 이들이 껌을 붙이며 만들어졌다. 2015년 불결하다는 이유로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청소했지만, 사람들이 다시 껌을 붙여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껌투성이가 됐다.

재래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골목의 ‘껌 벽’에 붙어 있는 껌들.
로버트 벤투리가 설계한 ‘시애틀미술관’ 본관과 그 앞에 있는 조너선 보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 서울 광화문에 있는 것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시장에서 껌 벽을 지나 몇 분 걸으면 '시애틀미술관(SAM)'이 나온다. 미술관 앞에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롭스키의 작품 '망치질하는 사람(Hamme ring Man)'이 있다.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있는 것 형제다. 다만 시애틀 것이 크기가 좀 작고,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망치질하고 있다.

박물관 본관은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가 설계했다. 기능주의를 비판하며 "간결한 것은 지루하다(Less is bore)"고 했던 건축가의 작품답게 곳곳을 조형적 요소로 채운 건물이다. 세 개의 줄로 나뉜 건물의 맨 윗부분은 유리로 둘렀다. 밝은 색 돌로 된 가운데 몸체에는 세로로 홈을 내고 '시애틀미술관'이라는 이름을 거대하게 새겼다. 색이 칠해진 맨 아랫줄에 아치형 출입구가 있다. 작품 2만5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별전 포함, 입장료 24.95달러. 화요일 휴관. 홈페이지 www.seattleartmuseum.org

건축물 천국

시애틀의 랜드마크로는 전망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 손꼽힌다. 하지만 미국 대중문화에 관심 많다면 그 옆에 있는 '뮤지엄 오브 팝 컬처(MoPOP)'에 가보는 것을 권한다.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폴 앨런이 세운 곳이다.

지미 헨드릭스와 너바나의 팬이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 지미 헨드릭스는 시애틀 태생이고 너바나는 시애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건물로 들어가면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 등 악기 500여개와 컴퓨터 30여대를 쌓아올려 만든 구조물 '이프 식스 워즈 나인(If VI was IX)'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노래에서 따온 이름. 이곳에서 지미 헨드릭스와 너바나 전시는 항상 열린다. 전시실에는 이들이 연주한(때로는 부순) 악기와 입었던 옷, 공연 세트 리스트를 적은 종이 등 온갖 사연이 담긴 여러 물건이 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뮤지엄 오브 팝 컬처’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 알루미늄을 마구 비틀고 구긴 듯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건축 마니아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비정형 구조로 공간을 뒤트는 캐나다 출신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마술 같은 건축을 만끽할 수 있다. 건물 주위를 360도로 돌아보고 나서도 당최 어떻게 생긴 건물인지 감이 안 잡힌다. 알루미늄판을 마구 구기고 찌그러뜨린 듯하다.

다양한 전시뿐 아니라 악기가 비치된 합주실 등도 있어 마음만 먹으면 온종일도 즐길 수 있다. 마블 영화 촬영에 실제로 쓰인 코스튬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내년 1월 6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시애틀에서 결성된 록밴드 펄 잼 전시는 다음 달 11일부터 시작된다. 특별전 포함, 입장료 36달러. 홈페이지 www.mopop.org

시애틀 인근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는 보잉,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코스트코 등이 유명하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곳은 아마존 본사의 새로운 사무 공간 '더 스피어스(The Spheres)'다. 유명 건축회사 NBBJ 설계로 올 초 지어진 이 건물은 거대한 유리 공 세 개가 나란히 연결된 형태다. 유리 안쪽에는 초록빛 잎이 가득 차 있어 도심 한가운데 있는 식물원 같다.

아마존 본사 안에 있는 '아마존 고(Amazon Go)'도 꼭 가 볼 것. 계산대와 계산 점원이 없는 매장인데 스마트폰 앱을 깔아야 입장할 수 있다. 물건을 집어들고 출구 쪽을 바라보면 이런 문구가 보인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가도 됩니다(진짜요)!"

렘 콜하스가 설계한 ‘시애틀 중앙 도서관’. 유리와 철근으로 된 불규칙한 다면체 모양 등으로 유명하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시애틀 중앙 도서관'은 건축 필수 코스로 꼽힌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층 여러 개를 엇갈려 쌓아올린 불규칙한 다면체 모양이다. 번쩍이는 외벽은 마치 유리 위에 철근으로 된 그물을 씌운 것 같다. 내부는 1층부터 최상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된 구조다. 2004년 지어진 이 건물은 '도서관은 고리타분한 공간'이라는 통념을 깬 곳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