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째 '퀴어축제'… 주말 서울광장 5만명 모여
30m 맞은편 기독교 등 '동성애 반대' 맞불집회
반라 옷차림·성인용품에 시민들 눈살 찌푸리기도
국내 성(性) 소수자들의 최대 행사인 ‘퀴어문화축제’가 14일 서울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같은 시각 서울광장 앞 대한문에서는 동성애를 규탄하는 대규모 '퀴어반대 집회'가 열렸다.
불과 30여m 거리에서 수만명이 모여 찬·반 행사를 여는 진풍경이 벌어졌지만 다행히 큰 마찰은 없었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들의 다양성을 강조하며 춤과 노래를 곁들인 다양한 문화행사를 이어간 반면, 종교단체 등이 주도한 ‘반(反)동성애’ 집회에서는 “동성애의 늪에 빠진 우리 아이들을 구해달라”며 목소리를 높혔다.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9번째다. 2000년 국내에서 처음 열린 이 축제는 2015년부터 서울시의 허가를 받아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주최측 추산으로 이날 행사에는 5만명 이상이 참가했다. 2000년 50여명 뿐이었던 이 행사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퀴어(queer)는 원래 '색다른'이라는 의미인데, 현재는 ‘성소수자’를 뜻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이 축제는 1969년 미국에서 일어난 '스톤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됐다. 동성애자들의 출입하던 미국 뉴욕의 스톤월 주점에 경찰이 단속을 나서자 동성애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이후 6~7월만되면 세계 곳곳에서 이 축제가 열린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부스에는 13개국 주한대사관과 성소수자부모모임과 각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등 105개 단체 등이 참여했다. 작년부터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참가했다. 한 동성애단체가 마련한 부스에는 ‘호신용 요술봉’이라고 이름붙인 남성의 성기 모양의 성인용품을 5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카드로 후원금을 모집한다는 알림판도 붙여놓고 있었다.
퀴어축제의 특징은 성(性)을 구별하기 힘들만큼 형형색색 현란한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이다.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문신을 하거나 무지개 가발을 쓴 이도 있었고, 가슴이 훤히 보이는 노란 치마를 입고 온 남성도 있었다. 한 외국인 남성은 상반신을 노출한 채로 광장 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양성애자라고 밝힌 이모(여·22)씨는 무더운 날씨에도 여성 친구와 팔짱을 꼭끼고 있었다. 그는 “1년 내내 아닌 척하고 지내다가 이렇게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있어서 너무 신난다”고 했다.
축제 현장에는 실제 성소수자들보다 이들의 행사를 보러 온 일반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직장인 한모(35)씨는 “아내와 함께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구경하러 왔다”면서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어울리다보니 그냥 재미있고 신이 난다”고 했다.
이날 축제에서는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도 선보였다.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는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해 구금 등의 처벌을 하는 전 세계 80개국의 국기로 만든 드레스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드레스 앞에서 사진을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민주당은 부스라도 설치하라”라며 “부스에서 먹거리도 좀 팔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후 4시 30분부터는 서울광장을 출발해 명동을 돌아오는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퍼레이드 차량 위에서는 웃통을 벗은 상태로 춤을 추거나 속옷이 다 드러나는 옷차림으로 포즈를 취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동성애자인 박모(41)씨는 “축제 분위기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비난하거나 욕설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올해는 ‘점점 인정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확 받았다”고 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서는 찬송가와 기도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라는 이름의 동성애자·성소수자 반대 집회로, 7000여명이 모였다. 반대 집회장 주변에도 부스가 줄을 이었다. 50~60대가 모여있는 한 부스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부채를 나눠줬으며, 또 다른 부스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라고 적힌 입간판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선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퀴어축제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자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일제히 ‘우~’하고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임모(53)씨는 “성적인 자유도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서울시도, 경찰도 왜 저런건 단속하거나 막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성애 자녀 때문에 나왔다는 박모(여·49)씨는 “내 아이만 되돌리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이대로 두면 우리 사회가 이상해질 것 같아 직접 (반대 집회에) 나서게 됐다”면서 “이제 부모들도 속앓이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백석대 신학과 3학년인 김모(43)씨는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일 수는 있지만 외설적이거나 과격한 부분이 있다”며 “(이들의 주장에) 무조건 수용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왔다”고 했다.
반대집회 참가자들도 집회를 마친 뒤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쯤 대한문광장을 출발해 숭례문, 서울시청, 광화문을 거쳐 대한문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했다. 일부 동성애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퀴어축제 행진을 가로막기 위해 도로에 드러눕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