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용산구 한남2고가차도 철거를 내년으로 미룬다고 16일 밝혔다. 시는 당초 지난 10일부터 한남2고가를 철거한다고 발표했다가 예정일 하루 전 돌연 계획을 철회해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시는 내년 한남2고가, 구로고가 철거를 시작으로 노들남·북 고가(2019년 이후), 선유고가(2019년 이후), 사당고가(2021년 이후), 강남터미널고가(2021년 이후), 영동대교북단고가(2021년 이후) 등 7곳의 고가차도를 단계적으로 철거할 계획이다. 본지 취재 결과, 7곳 모두 시의 연구 용역에서 "철거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결론났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가 입수한 시의 '고가차도 철거·재활용에 따른 교통운영 개선방안 수립 및 관리 기본계획'(2016)을 보면, 7곳 고가는 철거 비용이 막대하고 철거 이후 심각한 교통 체증이 우려돼 득보다 실이 크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한남2·구로·노들·강남터미널고가에 대해선 '철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이 보고서는 시가 7곳 철거 발표를 앞두고 유일하게 시행한 연구용역 결과다.
고가차도 철거 이후 발생할 도심 교통 정체는 심각한 수준으로 예측됐다. 한남2고가차도가 철거되면 한남대로 일부 구간의 평균 차량 통행 속도는 3분의 1 이상(시속 33.1㎞→22.4㎞) 줄어든다고 나타났다. 강남터미널고가차도 철거 시 반포대교 남단→서초역 방면 통행 속도는 현재의 4분의 1 수준(시속 13.6㎞→3.3㎞)으로 떨어진다. 택시기사 최모(57)씨는 "한남2고가는 경부고속도로·올림픽대로는 물론 종로까지도 빠르게 연결하는 도로인데 철거되면 택시 영업이 힘들어진다"고 했다.
고가차도를 철거한 이후 주변 도로에 후유증이 남은 선례도 있다. 대한교통학회가 발표한 아현고가차도 철거 전후 교통영향분석에 따르면, 신촌로 차량 통행 속도는 철거 전 시속 22.1㎞에서 철거 후 13.2㎞로 반 토막 났다. 이대역~아현역 구간은 시속 37.7㎞에서 10.2㎞로 감소했다. 중구 신당동 약수고가차도 또한 지난 2014년 철거된 이후 인근 체증이 심해졌다. 대한교통학회는 '철거 공사 초기에는 운전자들이 우회로를 이용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고가차도가 있던 구간으로 돌아와 혼잡이 심해진다'고 분석했다.
고가차도 철거 비용은 적게는 48억원(영동대교북단고가), 많게는 118억원(한남2고가)이다. 이에 반해 철거로 얻을 이익은 경관 개선과 고가차도 유지관리비 절감에 그쳤다. 유지관리비는 보통 연간 10억원 미만이다. 시가 철거 예정인 7곳의 고가차도 모두 비용 대비 편익이 경제적 타당성 판단 기준인 1에 크게 미달됐다.
서울시는 고가차도가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지역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고가를 철거하면 경관이 개선되고 침체된 상권이 살아난다"며 "해당 고가차도 관련 연구 용역은 교통 측면 분석에 치우쳤다"고 했다. 또 "내년부터 서울 사대문 안(16.7㎢)의 차로를 줄이면 도심 통행량이 자연스레 줄어 한남2고가를 철거해도 체증이 덜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가차도 철거 비용과 이익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정복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본부장은 "시가 철거하려는 고가차도 중 일부는 1990년대 지어져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고, 철거 시 교통 대안이 마땅치 않다"면서 "시가 도시경관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은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고가차도를 보수할 때 미관을 개선한다면 꼭 철거하지 않더라도 도시환경 측면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선 고가차도를 철거하지 않고서도 도시 경관을 개선하고 상권을 살린 사례가 많다. 캐나다 토론토는 지난 1월부터 가디너 고속도로 아래에 스케이트장을 운영하고 있다. 원형 공연장과 예술 전시장도 설치할 계획이다.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시는 고가차도 아래에 LED 조명시설과 예술품을 설치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멕시코는 고가차도 20곳 아래에 공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