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사람들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9일 중앙선관위를 찾아 한국기업이 제작한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이 민주콩고로 수출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민주콩고 시민단체인 ‘프리덤 파이터’ 대표단은 이날 선관위 과천청사를 찾아왔고, 김대년 사무총장에게 “한국 기업이 민주콩고에 터치 스크린 방식 투표시스템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부정 선거에 이용될 수 있으니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콩고 시민단체 ‘프리덤 파이터’와 면담하는 중앙선관위 김대년(오른쪽) 사무총장.

이들이 우리 선관위에게 이러한 요청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콩고에서는 오는 12월 23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민주콩고는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이 2001년부터 17년 넘게 장기 집권 중이다. 카빌라 대통령의 임기는 2016년 말로 끝났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1000명 이상이 숨지기도 했다.

서방 국가들이 민주콩고의 유혈 사태에 개입했고, 가톨릭 단체 중재를 통해 카빌라 대통령은 12월 23일 대선을 치르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민주콩고는 인구가 8000만명에 달하는데 200여개 종족이 200개 넘는 언어를 쓰고 있다. 투표 용지는 50페이지가 넘고, 4000억원 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민주콩고 선거위원회는 비용 절감을 물색하다 한국 기업인 미루시스템즈와 계약을 맺고, 이 회사가 개발한 터치 스크린 투표시스템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계약규모는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 10만7000대, 1억6000달러(1700억원) 가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콩고 시민단체가 중앙선관위에 터치 스크린 투표시스템 지원을 막아달라고 찾아온 이유는 터치 스크린 투표시스템이 부정선거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덤 파이터 관계자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 전자 투·개표 제도의 불비, 높은 문맹률, IT기기 사용 경험 부족 등으로 (민주콩고) 대선에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이 도입되면 부정선거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며 "선관위가 민주콩고 선거위원회에 한국 기업의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을 도입하지 말 것을 권고해달라"고 했다. 프리덤 파이터는 앞서 미루시스템즈와 중앙선관위, 법무부, 국회, 세계선거기관협의회 등에 관련 청원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대년 사무총장은 “민주콩고 대선정국의 불안정성에 우려를 표명한다”면서도 “한국 선관위가 민주콩고 선거에 개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사무총장은 “다만 우리나라 외교부를 통해 민주콩고 대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우려 사항들을 관계기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앞서 일부 외신은 중앙선관위 주도로 2013년 설립된 세계선거기관협의회가 지난해 민주콩고 선거위를 대상으로 국산 터치스크린 투표시스템 수출을 수의계약 형태로 추진하고, 수주물량 전체를 미루시스템즈에 몰아줬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측은 “관련 계약은 중앙선관위와 무관하며 콩고선관위와 한국 회사가 체결한 계약”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