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끼고 짧고...작은 여성용 야구응원복
(脫)코르셋 논란 기름 부어…여성 야구팬들 '부글부글'

"가슴이 너무 갑갑하다.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다."
"숨도 못쉬겠네. 현대판 코르셋 아닌가."

프로야구 여성팬을 위한 원피스 형태 야구 유니폼이 지나치게 작아 여성 야구팬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길이가 너무 짧거나 허리와 골반 등 몸에 달라붙는 디자인 때문에 야구장에 응원하러 나온 여성 관객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기자가 입어본 한화 이글스 여성용 원피스 유니폼. 사이즈 표대로 주문했지만 작아서 옷이 벌어질 정도였다.

◇터질 것 같은 유니폼...원피스인데 바지 없인 못입어
지난 6일 키 158~161cm의 두 기자가 한화이글스, 롯데자이언츠, LG트윈스의 여성용 원피스 형태 유니폼을 어깨와 가슴사이즈에 맞춰 주문해 직접 입어봤다. 한 기자는 숨을 깊이 쉬지 못할 정도로 상체가 답답해 옷을 입은지 30분도 되지 않아 벗었고, 또 다른 기자는 지나치게 짧은 길이에 민망해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10개 구단에서 여성용 원피스 야구 유니폼을 파는 곳은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 LG 트윈스 등 4곳이다. 공식 쇼핑몰에서 이미 판매 중인 한화 이글스의 여성용 야구 유니폼은 95사이즈가 가장 큰 사이즈다. 그러나 95사이즈는 품절 상태이며 85사이즈와 90사이즈만 주문 가능하다. 롯데 자이언츠도 여성 유니폼 상의는 75사이즈가 최소, 95사이즈가 최대 사이즈였고 95사이즈는 품절 상태다. 기아 타이거즈 역시 85, 90, 95사이즈 세 가지를 판매 중이다.

한화이글스의 원피스 형태 야구 유니폼의 경우, 가슴둘레 기준 정사이즈로 주문했다. 주문표에 적힌 85 사이즈는 가슴둘레 81cm로 기자의 가슴둘레보다 약간 남아야 한다. 그러나 직접 입어보니 단추도 간신히 잠겼고 옷을 입고 의자에 앉자 흉부가 조여오면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착용 후 10분이 지나니 왼쪽 어깨가 뻐근해지며 뒷골이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착용 15분 만에 윗 단추 두 개를 풀었다. 25분이 지나 상체를 조여오는 압박에 못 이겨 유니폼을 벗어던졌다. 반나절을 체험해보겠다는 계획이 무색했다.

팔 부분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반팔 소매 끝이 조여 마치 마른 걸레로 팔을 쥐어 짜는 느낌이 들었다. 양팔을 들어 마음놓고 응원하는 사람이 입는 옷이 아니었다. 가슴부분에 위치한 두번째 단추와 세번째 단추 사이가 벌어져 속옷이 비칠까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는 ‘바비인형’이 입는 옷 같았다.

6일 어깨 사이즈에 맞춰 또 다른 구단의 여성용 원피스 유니폼을 주문했다. 상체부분 단추는 얼추 잠겼으나 길이가 너무 짧았다. ‘원피스’라는게 무색할 정도였다.

원피스 형태로 나왔지만 지나치게 짧은 길이도 문제였다. 어깨 사이즈에 맞춰 롯데 여성용 원피스 75사이즈를 입어봤다. 75사이즈 유니폼은 어깨와 가슴, 허리 부분까지는 얼추 잠기는 듯 했으나 뒷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엉덩이 등 하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75사이즈의 총 기장은 78cm로 가장 큰 사이즈인 95사이즈(기장은 81cm)를 선택했어도 큰 차이는 없었다.

엉덩이 윗 부분만 간신히 덮는 수준의 길이였다. 원피스였지만 입고있던 바지를 벗을 수 없었다. 누군가 동의 없이 이 사진을 찍었다면, 신고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언짢았을 것이다. 야구 팬인 한 변호사는 “원래 (옷을 만든) 의도대로면 여성의 의지와 상관 없이 하반신이 다 보이는 것 아니냐”며 “이 정도면 공연음란죄 적용도 가능할 수준”이라고 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여성용 야구복 사이즈를 문의하는 여성들의 질문 글이 유독 많았다. “(여성분들은) 일반적으로 85~90사이즈를 많이 입던데 여리해지고 싶은 분들은 그냥 95사이즈 사세요”라는 추천 댓글이 달렸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에 맞춰 복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복장에 맞춰 다이어트를 하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두치수 이상 큰 옷을 구매해 몸매를 숨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이즈 때문에 아예 남성용 일반 유니폼을 사는 사례도 있었다. 한 여성 야구팬은 “남성용 일반 유니폼 사이즈는 75사이즈부터 120사이즈까지 7가지 사이즈를 판매한다”며 “가격도 여성 전용 유니폼보다 5000원 가량 싸서 남성용 중간 사이즈로 사서 넉넉하게 입는게 편하다”고 했다.

여성용 야구 유니폼을 제작한 업체 한 관계자는 “원피스용 유니폼이 일반 사이즈보다 작은 이유는 치어리더용으로 출시된 제품이기 때문”이라며 “치어리더 옷이 예쁘다는 고객들의 반응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일부러 허리를 강조하거나 길이를 짧게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 제품은 올해는 새로 출시된 것이 아닌 작년 재고상품”이라며 “신상품 제작시 더 큰사이즈에 대한 요청이 있다면 고려하겠지만 현재 재생산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올해 디자인 돼 새로 출시된 신제품이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지난 3일부터 새롭게 판매를 시작한 LG트윈스의 여성용 원피스 야구 유니폼 역시 옷에 몸을 맞춰야하는 상황이 왔다. 사이즈는 프리(free)사이즈 단일 제품이며 44사이즈에서 66사이즈까지 착용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 원피스의 가슴 단면은 32cm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 75사이즈(44cm)보다 작았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LG트윈스의 여성용 원피스 야구유니폼 신제품. 여성의 몸매를 강조한 제품으로 프리(free)사이즈 단일로 출시됐다.

이 제품은 LG 트윈스의 팬이자 인터넷 쇼핑몰 ‘이희은닷컴'의 대표인 이희은 디자이너가 제작해 발매 전부터 야구팬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S라인’이 강조된 디자인을 보고 박탈감이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여성팬은 “온라인 상에서 입은 모델들은 하나같이 마르고 몸매가 굴곡이 있다”며 “저 옷만 입으면 내 몸매도 저렇게 될 것 같다는 환상이 생기기도 하지만 직접 주문해 입어보면 박탈감만 느껴질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8일 기자가 직접 이 원피스를 입자마자 숨을 편히 쉬지 못했다. 니트 소재라 활동성이 좋을거라 생각했지만 ‘똥배'가 보일 생각을 하니 몸에 힘이 들어갔다. 긴장 상태로 10분이 지나자 신축성 없는 롯데나 한화 유니폼과 똑같이 어깨와 흉부에 근육통이 왔다. 무엇보다 ‘쫄쫄이 타이즈' 같은 원피스는 허벅지와 팬티 라인까지 선명하게 비쳤다. 흰색, 살색 속옷을 입었지만 음영으로 드러나는 몸의 형상을 가릴 수는 없었다. 꼼짝 없이 ‘이 옷은 다시는 못 입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폼을 제작사 관계자는 "니트 소재라 몸매에 맞게 늘어나는 상품이기 때문에 프리사이즈 단일로 출시하게 됐다. 77사이즈 고객도 착용할 수는 있지만 보통 이런 옷은 몸매를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상품이라 일반 상품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 LG 트윈스 팬이자 유명인인 이희은 대표의 쇼핑몰에서 원래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많이 팔고, 이번 유니폼은 이 대표와의 콜라보에 의의를 둔 것”이라며 “일부러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출시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여성팬들 "탈(脫)덕한다"...부글부글
야구는 다른 스포츠보다 여성팬들이 많다. 그럼에도 여성팬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응원복 제작에 온라인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자신을 '본투비' LG팬이라고 소개한 홍모(25)씨는 "구단에서 운영하는 공식 쇼핑몰에서 내놓은 여성용 원피스 야구 유니폼의 사이즈가 지나치게 작고 딱 붙어 입고 응원하기 힘들었다"며 "44 사이즈도 안 들어갈 크기였다. 여성복이라면서 사이즈는 아동복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홍모씨는 이어 “여성복이라고 하면 딱 붙는 옷이라고 생각하는 건 끔찍한 발상”이라며 “광고 사진에도 여성 모델의 가슴과 엉덩이가 부각된 사진을 썼는데 신체를 부각하는 사진이 제품 홍보에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구단에) 정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권모(23)씨는 "야구장에 직접 가 응원할 야구팬들에게 과연 이런 디자인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야구를 관람할 때 불편한 디자인이라면 대체 누굴 위한 건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임모(23)씨는 "치어리더들에게도 3월 개막전부터 짧은 핫팬츠에 배꼽티 수준의 반팔티를 입히는 걸 봤다"며 "야구팬 하면서 남성중심적이고 여자팬은 배려하지 않는 분위기에 탈덕('덕질을 그만두는 행위'를 줄인 말)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응원복이 지나치게 작은 것도 여성팬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일 기자가 여성용 야구 유니폼을 입어봤다. 역시 불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