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주요 20개국) 회원국이자, 남미에서 3번째 경제 규모인 아르헨티나가 금융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5%까지 인상하는 등 구제 조치에 나섰지만 폐소화 가치가 연일 하락하고 물가가 치솟는 등 금융 시장이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6월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6.7%포인트 하락하면서 2009년 만에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30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2주전 기준금리를 45%로 끌어올린 데 이어 15%포인트를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의 기준금리는 60%로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높은 수준을 기록하게 됐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조기 지원을 요청하는 등 돌파구 마련에 나섰지만 요동치는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 미국의 금리인상 및 보호무역 정책으로 신흥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는데다 아르헨티나 정부 내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금융 위기는 최근 뇌물 논란에 휩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정부 시절부터 예고됐었다. 당시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남발했던 포퓰리즘 정책과, 유럽발 금융위기로 아르헨티나 원재자 산업이 내려앉으면서 경제 침체 조짐이 보였었다.
◇ 기준금리 60%, 역대 최고 수준…IMF 구제금융 조기 요청까지
아르헨티나 정부는 연초부터 악화되고 있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날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45%에서 15%포인트 올린 60%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기준금리를 40%에서 45%올린 지 불과 2주 만이다.
중앙은행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은 페소화 환율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좀처럼 안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5%로 인상한 이후 달러당 페소화 환율은 29.93페소에서 30일 40.96페소로 무려 36.9% 상승했다. 그만큼 페소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앞서 구제금융을 요청했던 IMF에 조기 지원까지 독촉하고 나섰다. IMF는 지난 5월 아르헨티나의 구제금융 요청에 따라 총 50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는데, 이 중에서 150억달러는 즉시 지원하고 나머지는 분기별 검토를 통해 지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의 이 같은 긴박한 움직임은 아르헨티나 금융 시장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 BBC는 "IMF 구제금융 지원을 앞당긴 것은 아르헨티나의 절박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아르헨티나가 거대한 부채를 갚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아르헨티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도 "IMF 구제금융 조기 지원 소식이 전해지면서 페소화 가치가 7% 하락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 美 금리인상·보호무역 영향도 있지만…정책적 실패 요인 커
아르헨티나 경제가 올해 들어 유난히 악재를 겪고 있는 것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적대적인 보호무역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 자금을 철수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올해 여러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하자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신흥국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투자자들은 미 금리 인상으로 가치가 하락한 폐소화를 팔고 미국에 다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이 아르헨티나에 유난히 치명적인 이유는 투자자 이탈뿐만 아니라 달러 부채 문제가 증폭할 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가 늘어나면 해당 국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하락하면서 자금 이탈을 일으킨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위기 대응력 부족이었다. 이전 포퓰리즘 정부와의 단절을 선언한 마크리 정부는 전기, 가스 등 공과금을 인상하고 재정적자 절감 정책을 폈는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더 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마크리 대통령은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됐는데도 오히려 자국 금리를 낮췄고 재정 완화라는 아이러니한 정책을 취했다. 공과금 인상으로 하락한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이후 4월 27일부터 5월 4일까지 금리를 세 차례 올려 40%까지 인상했다. 또 페소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 중 수십억달러를 동원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고,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떨어졌다. 외환보유액은 국가의 환율 안정성과 국가신용도를 좌우한다.
또 최근 정·재계를 뒤흔든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터키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다. 지난 1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이 건설·에너지 분야 기업 임원들로 받은 뇌물 내역이 기록된 ‘뇌물 노트’가 공개되면서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등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와 무디스는 이 같은 부패 스캔들이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 2001년에도 IMF에 지원 요청…포퓰리즘 남발로 금융 위기 발발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도 IMF에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국가 부도 사태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았다. 정부는 IMF로부터 4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는데,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당시 상황을 매우 암울하고 비참했던 시기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든 은행 시스템이 마비됐다. 국민들의 자산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IMF의 금융개혁 프로그램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1년간 매우 혹독한 긴축 재정을 감행했다. 국민들은 자유롭게 통장 인출을 할 수도 없었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IMF 금융개혁 직후인 2003년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 집권 당시 원자재 호황으로 경기가 회복됐다. 그러나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대통령이 된 후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집권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공공지출을 늘리고 기업들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는 국민들의 공과금과 생필품 지원에 많은 세금을 투입했는데, 심지어 축구를 좋아하는 국민들을 취해 축구 방송 중계료까지 지원했다.
특히 페르난데스 정부가 환율을 통제했던 것이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의 주요 요인이었다. 환율 통제로 인해 암시장 달러 거래가 늘어났고, 환율 시장이 불안정해졌다. 2010~2011년 연평균 9%에 달하던 GDP성장률은 2012년 1.9%로 추락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2001년 IMF 위기 때보다 더 혹독한 경제난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또 아르헨티나는 원자재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데, 2010년 남유럽발 금융 위기로 인한 수요 부족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아르헨티나도 동반 침체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