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바라보는 허재 감독

'농구 대통령' 허재(53)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이 '아들 특혜' 논란을 넘지 못하고 두 아들과 함께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대한농구협회는 5일 허 감독이 사의를 표명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2016년 6월 대표팀 전임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당초 허 감독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였지만, 허 감독은 거센 논란 속에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허 감독이 임기를 약 5개월 남겨두고 자진 사퇴한 것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불거진 '아들 특혜' 논란 때문이다. 두 아들 허웅(25·상무), 허훈(23·부산 KT)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자 그간 이어져 온 논란에 불이 붙었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남자농구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전날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 참가할 최종 엔트리 12명 명단에서 허웅, 허훈이 모두 제외됐고, 허 감독까지 지휘봉을 내려놨다.

허재 삼부자가 처음으로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게된 것은 2016년 6월 말이다. 그해 6월 중순 허 감독이 전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고, 허웅이 기존에 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가운데 가드 박찬희가 부상을 당하면서 대체 선수로 허훈이 합류했다.

당시 허훈은 대학생이었지만, 공격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겸비한 공격형 가드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터라 논란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병역면제 혜택이 걸린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허웅, 허훈이 같은 포지션의 리그 최우수선수(MVP), 어시스트 1위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승선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허 감독은 신장 186㎝의 가드 허웅을 포워드로 선발하고, 이제 막 프로 무대에 데뷔한 허훈의 선발을 강행했다. 무리한 발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국가대표 후보군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대표팀을 구성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두 아들과 포지션이 겹치거나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됐던 장신 포워드 선발에 허 감독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선발 과정에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허 감독은 줄곧 아들 선발과 관련해 "경기력향상위원회와 논의 끝에 결정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경기력향상위원회가 장신 포워드를 선발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허 감독은 허훈의 대표팀 선발을 무리하게 강행하면서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안게임에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허 감독이 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러나 남자 농구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난적' 이란에 무기력하게 패배해 동메달로 대회를 마쳤다.

허웅, 허훈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실력으로 논란을 씻어내지 못했다. 특히 허훈은 아시안게임 8강전 이후부터는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장신 포워드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대표팀 유력 후보로 거론된 안영준(23·서울 SK)과 양홍석(21·KT)이 3대3 농구대표팀으로 출전, 5대5 농구대표팀보다 나은 은메달의 성적을 낸 것도 허 감독을 둘러싼 논란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허웅, 허훈을 모두 대표팀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유재학 경기력향상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은 아시안게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사퇴했다.

사실상 허웅, 허훈의 발탁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자신이 책임지겠다'던 허 감독의 입지도 좁아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사퇴의 길을 걷게 됐다.

두 아들과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았을 당시 "가문의 영광이지만, 아들이라고 해서 특혜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던 허 감독은 이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논란 속에 씁쓸하게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