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를 봤다. '모리야마씨'.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큐멘터리다. EBS에서 여러 나라 다큐멘터리를 모아서 'EIDF 2018'이라는 기획으로 일주일쯤 방영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놉시스를 보며 볼 작품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기다린 것이 바로 이 '모리야마씨'다.
홀렸기 때문이다. 삼십 초짜리 예고편에. 흰 티를 입은 백발 남자가 책을 본다. 음악을 듣는다. 책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노이즈 음악이 흐른다. 그게 다다. '별것 없다'고 한다면 할 만한 예고편이었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며칠을 기다려 이 문제의 작품을 보았다. 그러니까 '모리야마씨'를. 원제는 '모리야마상'. 그러니까 백발의 남자가 모리야마고, 모리야마씨는 일본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일라 베카와 (이름으로 짐작해) 프랑스인인 루이즈 르무안이 도쿄에 사는 남자 모리야마의 일상을 찍었다. 2016년 8월 그들은 모리야마씨 집을 방문한다. 그러고는 제안한다. 당신의 삶을 찍을 수 있겠느냐고. 모리야마씨는 수락하고 그들은 모리야마의 집에 7일간 머무르게 된다.
모리야마씨에 대한 소개로 작품은 시작된다. 나이, 학력, 결혼 여부, 직업 같은 세속적인 건 모두 생략되고 딱 이 말이 자막으로 나왔다. '모리야마씨는 평생 비행기도, 배도 타본 적이 없다. 일본도, 도쿄도 떠나본 적이 없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산다.' 이 모리야마씨는 같이 살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건축가에게 편지를 쓴다. 집을 지어달라는. 그런데 돌아온 답이 알쏭달쏭하다. '집은 필요 없다. 집을 부수기로 한다. 대신 작은 마을을 세우기로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 사람한테 집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건축가라니. 작품이 진행되며 의문이 풀렸다. 모리야마씨에게 필요 없다던 '집'이란 그가 살던, 그러니까 우리 대부분이 사는 집인 것 같다. 현대인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몇 걸음으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집. 그리고 '작은 마을'이란 다름 아닌 모리야마씨의 새 집을 은유한 말이었다. 이 '작은 마을'은 2005년에 세워진다.
흰색 건물 10동이 모리야마씨네의 '작은 마을'이 되었다. 흰색 건물은 각설탕 같기도 하고 백설기 같기도 하다. 단순한데 아주 이쁘다. 아니다. 단순해서 아주 이쁘다. 이 건물 열 동은 크기와 용도가 다르다. 넷은 모리야마씨가 쓰고, 여섯은 임대했다. 어떤 건물은 3층으로 되어 있고, 어떤 건물은 단층으로 욕실만 있기도 하고, 또 어떤 건물은 층고가 유난히 높다.
그리고 건물 사이에는 거의 숲을 이룬 듯한 나무들이 있다. 나무 그림자가 흰 벽에 지고, 흰색 건물에 나무의 초록이 섞인다. 아니다. 흰 벽이 나무의 그림자에 지고, 나무의 초록에 흰색 건물이 섞이는 걸 수도 있다.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무가 바람을 만들어내는 거라던 누구식대로 말한다면. 그렇게 이 집은 집인데 집이 아니며, 숲이며, 작은 마을이 되었다.
모리야마씨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영화와 음악은 좋아하지만, 책은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답게 거의 내내 책을 보며 지낸다. 음악 감상실처럼 만든 지하에서, 마당 의자에 앉아서, 하늘이 온전히 보이게 거대한 창을 낸 3층에서, 그리고 또 옥상에서. 모리야마씨가 책에서 책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조리를 신어야 하고, 흙을 디뎌야 하고, 집과 집 사이에 있는 다양한 나무들의 수형이 어우러지는 걸 보아야 한다. 걷고, 느끼고, 보고, 만지는 게 여행이라면 모리야마씨가 날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가는 것도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책을 읽는 일도 '여행' 아니던가? 다른 세계로 훌쩍 건너갈 수 있게 해주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모리야마씨는 한 번도 여행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매일같이 여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상 여행자'다.
이 영화에 자극적이거나 강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집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그렇다고 지루한 것도 아니다. 갓 빨아 다린 이불보 같은 흰 커튼에 나뭇잎과 햇빛이 어리고, 바람이 드나들고, 방에서는 오토모 요시히데의 노이즈 음악이 흐른다. 그것만 눈에 담는데도 마음이 분주하다. 모리야마씨는 이 방에서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책을 본다. 불을 끄고 음악만 듣기도 한다. 영화감독과 기린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기도 하고, 감독은 그가 키우는 관상어를 보고 이름을 '노이즈'라고 짓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그리고 생소한 노이즈 음악가들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런 담담한 걸 어떤 관찰 예능보다도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힌트도 하나 얻었다. 오토모 요시히데니 료지 이케다니 이 영화에서 언급된 노이즈 뮤지션들의 앨범을 구해 '백색 소음'으로 활용해야겠다는.
모리야마씨의 일상을 찍은 이 다큐는 '리얼'보다는 '환상'에 가깝다. 모리야마씨는 좋은 동네에 넓은 땅을 갖고 있는 자산가인 데다 안목과 취향이 좋으며, 무엇보다 시간과 돈에 쫓기지 않는다. 하나도 갖기 어려운 덕목을 그는 다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요소를 다 가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모리야마씨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악몽을 꾼다고 말하며 잠시 찌푸린 그를 보며 그가 꿈꾸는 행복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졌다.
모리야마씨의 집을 지은 사람은 명망 있는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와 세지마 가즈요다. SANA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나는 니시자와 류에의 책을 읽다가 알았다. 모리야마씨네 집에 있는 토끼 귀를 닮은 '래빗 체어'도 이들이 만든 것임을. 모리야마 하우스를 위해 말이다. 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이 건축 사무소가 모리야마씨네 집 바로 옆에 있다는 거다. 다큐멘터리를 찍은 듀오가 '모리야마 하우스 옆에 있는 류에의 사무실에서 찍었다'는 말을 넣어서 알았다. 그러니까 모리야마씨는 옆집에 사는 건축가에게 편지를 썼던 거다.
새삼 깨달았다. 편지는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거였다!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는 것처럼. 어쨌든 닿기만 하면 된다. 그게 어디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행복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