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숙소인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문 대통령께서 돌아본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가 초라하다"며 "수준이 좀 낮을 수 있어도 최대한 성의를 다한 숙소와 일정이니 우리 마음을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 의전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하면서 북측 시설이 낙후됐다는 점을 직접 언급한 것이다.

두 정상 부부는 이날 평양 시내 카퍼레이드 후 오전 11시 17분쯤 백화원 초대소에 도착, 입구에 선 채로 환담했다. 그 장면을 담은 영상이 김정은의 육성과 함께 잠시 뒤 공개됐다.

1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북한 김영남(맨 오른쪽)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도종환(오른쪽에서 둘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도 장관 뒤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김재현 산림청장,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김정은은 "6·15, 10·4 성명이 다 이 집에서 채택됐다"며 문 대통령에게 백화원의 역사를 설명했다. 이어 "지난 5월 문 대통령께서 판문점 우리 측 지역에 오셨는데 너무나 장소와 환경이 그래서(안 좋아서) 제대로 된 영접을 못 해드리고 식사 한 끼도 대접 못 해 늘 가슴에 걸렸다"며 "그래서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도 "최선을 다하느라고 노력했는데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열렬히 환영해주시니 정말 가슴이 벅차고 뭉클했다. 오늘 최고의 영접을 받았다"고 했다.

김정은이 북한의 열악한 경제 사정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4·27 판문점 회담 때도 "문 대통령이 (북한에)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不備)해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평창 동계올림픽을 갔다 온 분들이 고속열차(KTX)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했다. 지난 3월 미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대북 특사단에게) 김정은이 스스로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셀프 디스(자기비판)' 화법에는 대외적으로 선대(先代)와 다른 개방적인 지도자임을 과시하면서 우리 측에 남북 경협과 지원을 촉구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스스로를 낮춰 통 큰 지도자 이미지를 보여주며 상대방에겐 신뢰감을 주기 위한 협상 기술"이라며 "그런 틀 안에서 남측의 경제 지원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스위스 유학파로 유럽 사정에 밝은 김정은이 국제사회 제재의 직격탄을 맞은 북한 경제에 큰 위기감을 느낀다는 방증"이란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이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대대적인 지방 경제 시찰에 나선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김정은이) 북한 경제에 관해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했다. 남북 경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일 뿐 비핵화에 관한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