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 기자

음력 8월 15일 추석 명절은 신라에서 시작됐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년)조에는 여인들이 7월 16일부터 옷감 짜기 시합을 벌여 8월 15일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차려 사례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은 이를 한가위의 유래로 여긴다.

한데 전혀 다른 맥락의 '추석 기원설'이 하나 더 전해진다. 9세기 당나라에 건너간 일본 승려 엔닌(圓仁)의 기행문 '입당구법순례행기'다. 서기 839년, 엔닌은 장보고가 세운 산둥(山東)의 신라 사찰 적산원을 방문하고 절에서 겪은 8월 보름 명절을 소개했다. (A)"노승들 말에 따르면, 신라가 옛날 발해와 전쟁을 할 때 이날 승리했으므로 명절로 정하고 음악과 춤을 즐기던 것이 오래도록 이어져 끊이지 않았다." (B)"발해가 신라의 토벌을 당했을 때 겨우 1000명이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돌아와 옛날대로 한 나라를 세웠는데, 오늘날 발해라고 부르는 나라다."

문장 (A)부터 보자. 추석이 신라와 발해가 전쟁을 벌인 날이었다고? 두 나라의 무력 충돌은 기록상으로 딱 한 번 있다. 서기 733년(신라 성덕왕 32년, 발해 무왕 15년) 일인데, 이를 신라의 승리로 보기엔 이상하다. 당시 신라는 당나라 요청으로 발해 남쪽 땅을 공격했으나, 날이 춥고 큰눈이 쌓여 군사의 절반이 얼어 죽고 별 성과 없이 회군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문장 (B)에서 신라의 토벌을 당했다는 앞의 '발해'는 '지금 발해의 전신'인 '고구려', 뒤에 나오는 '발해'는 '지금의 발해'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엔닌 기록에 나오는 것은 고구려의 평양성이 나당연합군에게 함락된 서기 668년 상황이며, 전통적 8월 농경 축제가 이때부터 국가적 경축일로 의미가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추석이란 신라의 '삼국통일 전승기념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송편이 반달 모양인 것이 '백제는 둥근 달, 신라는 초승달'이라는 의자왕 때의 참언(讖言)과 관련 있다는 설도 있는 걸 보면 백제를 이긴 기념일이란 뜻도 포함됐을 것이다. 물론 신라인 입장에서 본 전승기념일이지만, 지난 1000여 년 동안 추석 명절이 민족 통합에 기여한 사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