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샌카를로스에 실내 농장이 문을 열었다. 745㎡(약 225평) 규모의 이 농장에는 농부도 농기구도 없다. 상추 2만6000포기를 로봇 3대가 키우고 있다.
높이 1m가량에 커다란 팔과 바퀴가 달린 로봇들은 장착된 카메라를 이용해 스스로 작물의 크기와 상태를 식별한다. 농장 안을 돌아다니며 정밀한 로봇 팔을 이용해 늦게 자라거나 해충의 피해를 입은 상추는 별도로 분리해 폐기하고 일정 수준 이상 자란 작물은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 담는다.
작물의 성장 단계와 질병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만든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한다. 농장 전체도 AI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습도와 온도, 조명이 작물에 따라 세밀하게 조정된다. 사람이 하는 일은 씨를 공급하고, 출하된 상추를 배달하는 것뿐이다.
이 농장을 만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아이언옥스(Iron Ox)'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에서 드론(무인기)을 개발하던 엔지니어들이 2015년 세웠다. 회사 이름은 '철로 만든 황소'라는 뜻이다. 이 회사의 브렌드 알렉산더 최고경영자(CEO)는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기존 농장의 30분의 1에 불과한 면적에서 동일한 양의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배 공간을 층층이 쌓아올려 일종의 수직 농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땅에 직접 심는 것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아진 것이다.
아이언옥스는 왜 땅이 넓은 미국에서 이런 로봇 농장을 개발하고 있을까. 바로 '도심 농장'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도시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농장은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먼 거리에서 농작물을 운반해 오다 보니 유통 비용은 올라가 가격은 비싸지지만 신선도는 떨어진다. 농장을 압축형으로 만들고 자동화해 도심에 둠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에서다. 와이컴비네이터, 체루빅벤처스 등 실리콘밸리의 대형 벤처투자사들이 아이언옥스의 주요 투자자이다.
도심 농장을 만드는 것은 아이언옥스뿐이 아니다. 도시 주변에 실내 식물 공장을 설립하는 스타트업 '플랜티'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세운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서 2억달러(약 2200억원)를 투자받았다. 이 밖에 에어로팜, 프레이트팜스, 바우어리 같은 스타트업들이 로봇,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이용한 신개념 농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농업과 기술의 융합을 뜻하는 애그테크(AgTech·Agricultural Technology)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농업 정보 회사 애그파운더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애그테크 투자 규모는 43억달러(약 4조8700억원), 4년간 누적 투자 금액은 150억달러(약 17조원)에 이른다. 기존 농작지에 로봇과 드론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대 연구팀이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 트랙터를 2020년부터 전국 농가에 공급할 계획이다. 4대의 트랙터가 위성의 지시를 받아 밭 갈기, 씨 뿌리기, 물 뿌리기, 수확 등을 척척 해낸다.
미국 프랭클린 로보틱스는 농장을 혼자 돌아다니며 잡초만 제거하는 로봇 '터틸'을 상용화했다. 미국 플로리다대는 딥러닝(심층 학습)을 이용해 하늘에서 식물의 생장 상태와 병충해 발병 여부를 알아내는 드론 기술을 감귤 농장에 활용하고 있다. 첨단 로봇과 드론이 전 세계적인 농업 인력 감소와 노령화 문제를 해결할 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