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 대니얼 지블랫 지음 |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352쪽 | 1만6800원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 제도를 직접적으로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의 규범 파괴는 분명히 그러한 일을 했다."
트럼프 당선 직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썼다. 이 글은 1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고,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거듭났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두 저자는 독재자가 될 소지가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졌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패턴 속에서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지도자’ 등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을 찾아냈다.
경제 격차와 빈곤으로 분노하는 시민들이 희생양을 찾을 때를 틈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포퓰리스트들은 늘 있었다. 다수는 권력을 잡는 데 실패했지만, 일부는 성공했다. 미국의 트럼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를 비롯해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은 어떻게 권력의 중심부에 다가갈 수 있었을까?
저자들은 극단주의자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사라진 것을 이유로 든다. 미국의 경우, 각 정당이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동료 정치인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는 분명 비민주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동료 정치인들만큼 대선에 나서고자 하는 후보 정치인들의 능력과 인격과 이념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검증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 경험 없는 대중선동가와 극단주의자를 철저히 가려냈다.
히틀러를 지지했던 포드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가 시민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후보가 될 수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각 정당은 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한다는 명목으로, 당 지도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게 했다. 덕분에 후보를 검증하는 정당 기능은 크게 약해졌다.
저자들은 정당의 문지기 기능이 약해질 때, 권력의 중심에 위험인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부터 페루의 후지모리,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트럼프 등의 사례를 통해, 정당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잠재적 독재자들을 방조했고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