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옛 국세청 남대문 별관 일대에 지어질 역사문화 공간 설계 공모가 열렸다. 시청, 덕수궁, 성공회 주교좌성당 등 상징적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이란 점에서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나선 가운데 당선을 거머쥔 이는 건축가 조경찬(46)씨. 그가 설계한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도시건축박물관(대지면적 1558㎡, 연면적 2998㎡)'이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 내년 3월 정식 개관을 앞두고 오는 31일까지 임시 개관한다.

지난 15일 박물관에서 만난 조씨는 "이번 프로젝트가 삶을 완전히 바꿨다"고 했다. 조씨는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에 다시 입학해 졸업했다. 유명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의 사무소에서 8년간 일한 뒤 자신의 사무소 '터미널7아키텍츠'를 열어 뉴욕에서 활동하던 그는 공모에 당선돼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떠난 지 15년 만이었다.

조씨의 설계안은 지상부는 낮게 만들고, 그 대신 지하로 깊게 파고든 것이 특징이다. 건물 자체의 존재감을 낮춘 대신 주변과의 조화를 꾀했다. "건물 전면 외관은 지하로 통하는 관문 같은 느낌을 주려 했습니다. 동시에 덕수궁 돌담과 이어지게 디자인했고요." 건물 처마 높이를 덕수궁 돌담 기와 높이에 맞춘 건 그 때문이다. 그는 "아직은 외관이 노출 콘크리트로만 돼 있지만, 곧 처마에 기와와 비슷한 어두운 색 금속을 입혀 돌담과 어울리게 할 예정"이라고 했다.

옥상에는 광장이 조성됐다. 세종대로 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는 경사진 형태로 가장 높은 곳은 보통 건물 2층보다 살짝 높다. 광장과 마주 보는 건물은 시청사이지만, 그 옆 서울광장과 저 멀리 소공로를 바라보도록 동선을 짰다. 조씨는 "광장에 서서 혹은 편히 바닥에 앉아서 세종대로 일대나 성당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는 "작품 콘셉트는 '공간을 비워낸다'는 것"이라고 했다. "비워진 공간인 마당을 통해 내부 공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이기도 하죠. 옥상 광장은 도심 속 마당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건물 내부도 상당 부분 비어 있다. 현재 개방된 지하 3층 다목적 전시장은 지상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바닥 없이 뻥 뚫려 있다. '외부와 내부를 잇는다'는 의미가 있고, 층고가 높아 박물관이라는 전시 공간의 용도도 반영한 설계다.

지난 15일 임시 개관한 세종대로의 서울도시건축박물관 옥상에는 광장이 조성됐다(왼쪽). 건축가 조경찬씨는“도심 속 마당 같은 공간”이라고 했다. 박물관 내부 전시장은 지하 3층부터 지상 1층까지 바닥 없이 뚫려 있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도시건축박물관 뒤로 성공회성당이 보인다.

일각에선 "옥상이 지상보다 지나치게 높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조씨는 "지상과 옥상 공간을 명확히 구분한 것"이라고 했다. "높이를 너무 낮게 만들면 서울광장과 다를 게 없는 이도 저도 아닌 공간이 됩니다. 광장을 높여 지상부와 구분한 뒤 도심 속에서 계단 몇 개만 오르면 훨씬 덜 번잡한 휴식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했습니다." 실제로 옥상 광장에 오르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기엔 지상과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세종대로의 소음이 줄어 마치 도심에서 한 발짝 물러선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는 "원래 계획과 달리 성공회 주차장 부지와 광장이 연결되지 못한 점은 가장 아쉽다"고 했다. 지금은 경계를 따라 유리벽이 세워져 있다. "열려 있도록 설계한 곳이 벽으로 막혀서 보기에 좀 어색해요. 모쪼록 서울시와 성당 측이 잘 협의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