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업체 페이스북의 디지털콘텐츠 매니저인 밥 펙(29)은 매일 회사 옥상 정원으로 출근한다. 정원 한쪽의 명상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지그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어제 나를 괴롭게 한 일은 무엇이었나'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펙은 "매일 20분씩 명상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면서 "명상을 시작한 이후엔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펙이 주도하는 페이스북 명상 동호회 멤버는 1000명에 이른다.

미 캘리포니아주(州) 스탠퍼드대학 명상센터‘윈드호버’에서 한 사람이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다. 명상을 하면 뇌의 대뇌피질이 자극을 받으면서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첨단 기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명상 열풍이 일고 있다.

첨단 기술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 명상 열풍이 거세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구글·인텔·세일즈포스 등 거대 테크(기술) 기업들이 직원들의 명상 교육에 앞다퉈 나서고 있고, 위워크 같은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공동 사무실에도 명상실이 설치되고 있다. 기술 전문지 와이어드는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디지털 기기에 항상 묶여 있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명상에 열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리콘밸리 기업 중 가장 먼저 2007년부터 사내 명상 교육을 시작한 구글은 교육 수료자가 5000명이 넘는다. 구글의 사내 명상 교육 과정이었던 내면 찾기 프로그램(SIY·Search Inside Yourself program)은 2012년 비영리 교육 기관으로 독립했다. SIY의 애비 올름스태드 프로그램 매니저는 "감정 이입, 리더십 등을 이틀간에 걸쳐 가르치고 별도로 전문 명상 강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도 있다"면서 "케이블TV 업체 컴캐스트, 보험사 AXA, 제약업체 로슈 등 글로벌 기업들의 사내 명상 교육도 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선문답을 하는 대신 각자의 상황에 적합한 상담을 해주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심리 컨설팅에 가깝다"고 했다.

과학적으로 명상의 효과가 입증된 것이 명상 열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 5년간 미국에서는 연평균 1200건의 명상 관련 과학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명상을 하면 뇌 구조 및 뇌파가 어떻게 변하는지, 명상이 호르몬 분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이 연구의 주 내용이다. 스탠퍼드대 명상센터의 테리 뉴튼은 "명상을 하면 뇌의 대뇌피질이 자극을 받으면서 집중력이 높아지고 감정 조절이나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 입증됐다"면서 "뇌과학계에서도 뇌가 신체의 다른 근육과 마찬가지로 훈련하면 강화할 수 있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과학적 근거를 찾은 것이 명상 대중화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명상 관련 산업도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AGE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명상 산업 규모는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에 이른다. 한국계인 김윤하씨가 창업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심플해빗'은 지난해 명상 앱(응용 프로그램)을 출시해 1년 만에 200만명 이상의 고객을 모았다. 명상 강사 100여명이 중요 미팅, 시험 등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에 맞춰 명상하는 법을 알려준다. 일각에서는 명상의 효능이 과포장되고 있으며 유행으로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윌로우비 브리튼 브라운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학에 기반한 엄밀한 실험이 더 많이 진행돼야 명상의 효과를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