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온라인 쇼핑에 밀려 위기에 몰렸던 미국의 전통 유통업체들이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대형마트 체인인 타깃 매출은 올해 2분기 6.5% 늘어 2008년 이래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타깃의 브라이언 코넬 CEO는 CNBC에 출연해 "이보다 더 긍정적인 매출 환경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포브스는 이를 "유통 르네상스(retail renaissance)"라고 표현했다. 유통업체들의 선전은 미국의 올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이 4.2%대로 호황이고 실업률이 완전 고용 수준인 3%로 떨어져 서민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덕이 크지만 유통업계에선 업체들 스스로의 자구 노력도 높게 평가한다.
◇'온라인 주문, 오프라인 픽업'
몇 년 전까지 미국의 대형 유통 업체는 아마존 등 온라인 업체의 공격에 대응해 온라인 부문을 강화하는 데만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엔 온라인을 활용해 오프라인 쇼핑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월마트는 고객이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미리 주문하고 퇴근길에 매장 주차장에 들르면 직원이 나와 주문한 제품을 차에 실어준다.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이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은 월마트 앱으로 쇼핑한 뒤 가장 편리한 시간과 장소에서 물건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신선도가 중요한 식료품은 퍼스널 쇼퍼가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직접 고객의 차로 보내준다.
미국 최대 수퍼마켓인 체인 크로거도 구매자가 물건을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매장에서 받아 가는 '클릭리스트(clicklist)'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온라인에서 사고 싶은 옷을 장바구니에 넣어 놓으면, 매장에 가서 즉시 입어볼 수 있는 '예약하고 입어 보기(reserve and try in store)' 서비스를 내놓았다. 고객들은 이 서비스가 나온 뒤 온라인에서 옷을 사고 마음에 들지 않아 반품이나 환불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며 호평하고 있다.
마케팅 전략업체 파패치의 스테파니 페어 수석 전략가는 "6~7년 전까지는 모두가 이커머스 얘기밖에 안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2000년대 전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접목시킨 쇼핑을 선호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온·오프 결합 방식 서비스의 유행에 대해 "고객들이 여전히 상품을 직접 보고 만지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객이 체험하게 하라
일부 유통업체는 오프라인 매장에 색다른 체험 서비스를 도입해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미국 의류·잡화 디자이너 브랜드인 레베카 밍크오프는 IT 기술을 접목한 '커넥티드 피팅룸(connected fittingroom)'을 운영 중이다. 고객이 매장 내 진열된 블라우스를 들고 피팅룸에 들어가 벽면에 걸면 센서가 바코드를 자동으로 인식하면서 전면의 거울(화면)에 해당 제품이 뜨고, 동시에 같이 코디하면 좋을 재킷, 가방, 신발의 추천 목록이 화면에 나타난다. 블루밍데일스는 '미얼리티(Me-ality)'라는 체형 스캔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얼리티는 고객의 신체 치수를 정확히 파악해 몸에 맞는 청바지 등을 추천해준다. 뉴욕 맨해튼 소호에 있는 나이키 매장에선 운동화를 신고 매장 내의 러닝머신에서 직접 뛰어볼 수 있다.
이런 체험 프로그램은 고객들이 합리적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고객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사하기도 한다. 전 세계에 300개 이상 매장을 갖고 있는 '빌드 어 베어 워크숍(Build a bear workshop)' 매장도 체험으로 고객몰이를 하고 있는 업체 중 하나다. 이곳에서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테디베어 인형을 만들 수 있다. 고객들이 천의 재질과 무늬, 인형에 들어갈 솜의 분량, 인형 옷과 구두, 속옷, 액세서리 등을 선택하면, 직원들은 고객의 의사를 반영해서 기계로 인형 제작을 도와준다. '빌드 어 베어 워크숍'은 크루즈, 영화관, 리조트 등에 임시 매장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체험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유통 네트워크 '서드채널'의 지나 애쉬 CEO는 "고객에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인공지능으로 매장 관리 효율화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최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해 매장 관리의 효율을 높인 점도 전통 유통업체 부활의 요인으로 꼽힌다. 수퍼마켓 체인 크로거는 일부 지점에서 '스마트 선반(Smart Shelf)' 시스템을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이다. 스마트 선반에 장착된 디스플레이에는 가격, 영양성분 등의 상품 정보가 표시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 고객은 쇼핑 리스트에 있는 상품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수퍼마켓 체인 자이언트이글 역시 스마트 선반 시스템을 활용해 팔린 물건을 채워넣는 시간을 기존보다 3분의 2가량 단축했고, 재고가 없어 상품을 못 파는 경우는 절반으로 줄였다. 매장 관리를 아예 로봇에 맡기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타깃은 매장 관리용 이동로봇 '탤리(Tally)'를 도입했다. 탤리는 매장을 돌며 가격표가 붙어 있는지, 재고가 충분한지, 상품이 제자리에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탤리'를 개발한 심베 로보틱스의 CEO 브래드 보골리아는 "보통 매장 직원이 1만~2만개의 상품을 점검하는 데 일주일에 20~30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탤리는 한 시간에 1만5000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전통 유통업체의 이 같은 시도들을 소개하며 "전통적인 유통업체에 조종(弔鐘)이 울릴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보도했다. 포브스는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개성이 없고 지루한(boring) 업체들만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