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장에서 카메라 플래시는 금기다. 다른 관람객에게 불편을 끼칠 수도, 강한 섬광에 작품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메라 플래시를 들이대야만 진면목이 드러나는 작품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미니멀 변주' 전시장에 걸린 사진 '검은 사각형의 비밀'은 그저 검은색 단색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목처럼 이 검은 사각형(145×145㎝)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휴대전화 카메라 플래시를 비추면 검정 너머 희미하게 인쇄된 5만원권 지폐 50여장이 빽빽이 존재를 드러낸다. 박남사(51) 작가가 5만원권을 찍어 포토샵으로 복제해 나열한 뒤 최대한 가까스로 보이게끔 인쇄한 것이다. 박 작가는 "단색의 어둡고 두꺼운 장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비밀을 볼 수 있다는 콘셉트"라며 "최근 한국 단색화 인기의 이면에 미술 시장과 돈이 있다는 조롱"이라고 말했다.

권순관 작가의 ‘어둠의 계곡’. 손전등을 켜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오는 10일까지 열리는 권순관(45) 작가의 사진전엔 2016년 작 '어둠의 계곡'이 걸려 있다. 1950년 미군의 양민 학살 후 암매장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충청북도 영동 노근리 일대 숲에 텐트 치고 일주일간 지내며 촬영한 것이다. 225×720㎝짜리 이 대형 사진은 그저 캄캄한 야산처럼 보이지만 작가의 권유대로 플래시를 비추면 보이지 않던 숲의 살결이 드러난다. 권 작가는 "촬영한 건 한낮이었지만 지나간 역사의 어스름을 표현코자 밝기를 낮춰 연출했다"며 "지금은 그저 나무와 흙뿐일지라도 관람객이 손전등 들고 안쪽을 살피듯 추(追)체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