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포스트 평창'이다.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8일(한국 시각)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2018 유로아이스하키챌린지를 시작으로 다시 스틱을 잡는다. 이번엔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헝가리와 차례로 맞붙는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뛰었던 귀화 선수 7명은 이번 대표팀에 없다. 대신 젊고 덩치 좋은 국내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 한국이 내년 세계선수권은 물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자력 진출까지 내다볼 수 있도록 세대교체 작업에 착수한 결과다. 백지선 감독은 "이번 대회에선 승패보다도 잠재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포스트 평창' 시동 건 男 아이스하키

우선 골리 김형찬(18·경성고 3)이 파격이다. 2000년 12월에 태어난 '고3 국가대표'다. 맷 달튼(32·한국 이름 한라성)에 이어 대표팀 골문을 지킬 기대주로 촉망받는다. 1979년 김정규(당시 경성고3) 이후 39년 만에 대표팀에 뽑힌 고교생이다. 여드름 자국이 남은 앳된 소년의 얼굴인데, 키 193㎝, 몸무게 90㎏으로 아시아 아이스하키에서 보기 드문 체격을 자랑한다.

지난달 30일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남희두(왼쪽)와 김형찬은 영하의 링크장에서도 땀이 뚝뚝 흘렀다. 남희두가 골문을 향해 퍽 세례를 쏟아부으면 김형찬이 눈을 부릅뜨고 막았다. 두 선수의 장비엔 최고 시속 180㎞로 날아드는 퍽이 스쳐간 흔적이 그을음처럼 빽빽했다. 듬직한 덩치만큼 꿈도 크다.

골리는 아이스하키에서 전력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중요하지만, 한국이 가장 취약했던 포지션 중 하나다. 건장한 체격과 순발력을 요하는 데다, 다른 포지션보다 장비가 무겁고 비싸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골리를 기피해 좋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는다. 대표팀 코치진이 체격 좋고 잠재력을 가진 국내 선수를 키우기 위해 고교 리그까지 샅샅이 뒤진 끝에 고른 게 바로 김형찬이다.

김형찬은 "퍽이 헬멧을 스치면 마찰열 때문에 탄내가 날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데,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퍽을 막아낸 뒤 다음 동작을 빠르게 연결하려는 씩씩한 모습이 강점"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슬로바키아에서 1년에 절반씩 머무르는 하키 유학을 중학교 때부터 해와서 유럽 하키 스타일에도 친숙하다. 그는 "우리가 동네 태권도장을 다니는 것처럼 유럽은 하키를 편하게 접하는 환경이 인상적이었다"면서 "눈과 손의 협응력을 기르려고 매일 테니스 공으로 저글링을 하고, 틈나는 대로 스텝 운동을 한다"고 했다.

◇고교 골리와 천재 수비수 듀오

수비수 남희두(21·연세대 3)는 한국 아이스하키의 전술과 스피드를 한 단계 격상시킬 선수로 기대를 모은다. 경희초등학교 재학 중 3년간 캐나다에서 유학하며 '본토 하키'를 익혔다. 키 186㎝, 몸무게 85㎏의 건장한 체격에 유연하고 빠른 스케이팅, 서너 번 앞을 내다보는 위치 선정, 몸싸움(보디 체킹)과 공격력 등을 두루 갖췄다. 축구로 치면 프랑스의 포그바 같은 핵심 미드필더다. 일부 외국인 지도자들은 "남희두가 한국에서 스케이트를 가장 잘 탄다"고 첫손에 꼽기도 한다.

2015년부터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지만 유독 성인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개막 직전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고, 5월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월드챔피언십 직전엔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백 감독님이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수비수 출신이라 정말 배울 게 많다. 스틱 놓는 위치와 일대일 수비 방법 등 사소한 것부터 강조하셔서 하키를 처음부터 배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리 태극 마크를 달겠다는 일념 하나로 6개월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재활에 매진했다. 드디어 국가대표가 된 만큼 한국 하키를 세계에 각인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진천선수촌 빙상장 입구엔 '대한민국 아이스하키에 불가능은 없다'는 문구가 붙어있다. 이들은 "관중석에서 평창올림픽을 보면서 정말 뛰고 싶었다. 2022년 베이징올림픽 티켓은 우리가 직접 따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한 번 가면 발자국만 남지만, 여러 번 가면 길이 된다. 평창의 꿈을 이어갈 후배들의 도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