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미국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Blue Bottle)이 내년 초 한국 진출을 공식화했다. 블루보틀을 아는지 여부가 첨단 유행에 민감한 소위 '힙스터'의 가늠자가 되기도 할 정도로 인기 있는 브랜드. 첫 상륙지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다.
블루보틀은 미국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제임스 프리먼(Freeman·51)이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시작했다. 최고급 생두를 직접 볶아 24시간 내에 팔아 신선한 커피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 일대를 중심으로 매장이 확대됐고, 뉴욕·워싱턴·마이애미 등 미국 전역을 거쳐 2015년에는 일본에도 진출했다. '스타벅스'의 독주를 막으며 커피업계 제3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매장 수는 미국 56개, 일본 10개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두 번째 해외 진출 국가다.
캘리포니아 카페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온 건 블루보틀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3년 사이 미스터홈즈베이크하우스(Mr. Holmes Bakehouse)와 비파티세리(B.Patisserie), 타르틴베이커리(Tartine Bakery)까지 잇따라 진출했다. 미스터 홈즈 베이크하우스와 타르틴베이커리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매장을 낸 도시가 서울이었다. 비파티세리도 샌프란시스코, 하와이에 이은 세 번째 매장을 한국에 냈다. 미국 동부보다 더 앞서 한국 진출을 한 셈이다. 왜 미국 다른 지역보다도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에 먼저 상륙했을까.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젊은 층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타르틴베이커리.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이 집 대표 메뉴 중 하나가 크루아상. 세 사람이 크루아상 쟁반 앞에 줄을 섰다. 빵을 고르던 김진영(35)씨는 "집이 서초동인데 빵을 사기 위해 강을 넘어왔다"며 "여기 크루아상은 다른 곳에서 흉내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비파티세리'. 4층짜리 건물을 전부 사용한 이곳은 퀸아망(1800년대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원형의 버터 페이스트리)으로 유명하다. 1층 베이커리 매장은 빵을 사러 온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 등으로 붐볐다. 친구와 함께 퀸아망과 커피를 즐기던 20대 여성은 "매장도 예쁘고 퀸아망이 가끔 생각나 자주 온다"고 말했다. 매장 직원은 "가로수길 근처이다 보니 젊은 층 손님이 많다"며 "인스타그램 등을 보고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특별함'이다. 블루보틀 커피의 파란병 로고는 애플의 사과 로고만큼 젊은 층에게 매력적이다. 타르틴베이커리의 천연발효종 시골빵과 비파티세리의 '퀸아망'은 아직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는 아니다. 미스터홈즈베이크하우스는 크루아상과 머핀을 합친 '크로핀'이라는 혁신적인 메뉴로 유명해졌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커피와 베이커리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라며 "소비자들은 포화된 카페·베이커리 시장에서 더욱더 혁신적이고 특별한 맛을 찾는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디저트 외식 시장 규모는 8조9000억원대로 전년 대비 13.9% 증가했다. 전체 외식 시장의 10.7%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로 전체적인 외식 시장은 위축되지만, 카페·베이커리 시장 규모는 성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유행 민감성'이다. 이들 브랜드는 미국 내에서도 소셜미디어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맛집 투어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이라는 이름표는 매력적이다.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스타트업의 거대한 요람으로 전통적인 금융가인 뉴욕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젊은 감성이 묻어 있다. 2000년 초 월가 붕괴 후 과거 뉴욕이 갖고 있던 트렌드한 이미지가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범준 제주대 교수는 "최근 전 세계 트렌드세터들은 미 서부(포틀랜드 등) 문화에 주목하고 있고, 서울은 수용할 시장 규모는 갖고 있으면서 소비자들이 늘 갈증을 느끼고 있어 이들이 진출하기에 최적의 도시"라고 말했다.
커피·베이커리 유행 기간 짧아
기업 입장에서는 서울이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가 많으면서 1000만명이 사는 '메가 시티'라 좋은 '테스트 베드(test bed)'가 된다. 그동안 일본 도쿄가 하던 역할이 조금씩 서울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브랜드의 '서울 러시'에 대해 "미 서부 외식 브랜드에 대해 아시아 국가가 유럽이나 북미 다른 지역보다 우호적이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동부에 진출했다 실패하면 명성에 흠집이 나지만 한국에서는 실패해도 큰 영향이 없는 것도 이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행에 민감한 브랜드가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과 만나다보니 인기가 빨리 식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국내에 처음 진출한 미 서부 브랜드 미스터홈즈베이크하우스는 최근 가로수길점을 문 닫았고, 신세계백화점 팝업스토어 매장도 1년 만에 철수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카페·베이커리 유행은 6개월마다 바뀌어 의류(2~3년)보다도 지속 기간이 짧다"고 말했다. 당장 비파티세리와 타르틴베이커리도 오픈 초기의 열기는 식은 상태다.
서울 내 유행 중심 지역이 빠르게 변한다는 점도 영향을 준다. 국내 진출한 순서대로 미스터홈즈베이크하우스와 비파티세리는 가로수길에, 타르틴베이커리는 한남동과 홍대에, 내년에 문을 열 블루보틀은 성수동에 매장을 낸다는 점이 국내 '핫한' 지역의 변화를 보여준다.
블루보틀은 당초 서울 강남이나 삼청동에 첫 매장을 열 것으로 예상됐지만, 성수동을 선택했다. 블루보틀 측은 "1호점이 들어설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최근 새롭게 각광받는 지역"이라며 "최근 젊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둥지 틀면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한다"고 했다. 1년 사이에 트렌디한 장소가 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매장 운영에 위험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블루보틀의 경우에는 이미 트렌디한 이미지가 많이 사라진 상태에서 국내에 진출한다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블루보틀은 지난해 지분의 68%를 약 4억2500만달러(약 4800억원)에 세계 최대 식품 회사인 스위스 네슬레에 매각했다. 이로 인해 스텀프타운커피·피츠커피·리추얼커피·벌브커피 등과 함께 미 서부 브랜드로 커피 제3의 물결을 이끌던 명성이 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