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6일 일요일. 이날은 1면 사진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뒤지지 않아도(편집자의 사진 모니터엔 매일 내·외신 사진 7000장 정도가 올라온다) 됐기에 1면 편집자에겐 행복한 날이었다.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했다. 그가 포토라인에 서 있는 장면만으로도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는데, 우 전 수석 스스로 여기에 ‘플러스 알파’(+@)를 더했다. "가족회사의 자금을 유용했습니까?"라고 묻는 방송 기자를 쏘아본 것이다. 우 전 수석은 질문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크게 한 번 굴리더니 곧바로 강렬한 ‘레이저 눈빛’을 발사했다. 수십 명의 사진 기자들 앞에서였다. 이날 카페에서도, 식사 자리에서도 사람들의 대화는 "그 장면 봤어?"로 시작했다.
#서초동 스나이퍼
편집부 기자들이 '레이저 눈빛'을 화제 삼아 저녁을 먹고 있을 시각, 큼지막한 가방을 둘러멘 청년 하나가 서초동 검찰청사 맞은편 빌딩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계단. 옥상의 출입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을 열자 영하의 바람이 들이닥쳤다. 11월의 차가운 어둠. 그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묵직한 물건들을 하나둘 꺼냈다. '철컥, 철컥' 장비를 조립하고, '탁, 탁' 삼각대에 고정한 다음, '티리리릭' 조준경의 초점을 맞췄다. 휴우~.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검찰청사까지는 300m, 표적은 11층의 조사실에 있을 것이다.
10분, 20분… 30분. 건물 외벽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그때, 창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찰칵. 사무실 불빛이 비치는 그곳에 누군가 있다. 찰칵, 찰칵. 표적인가? 또 움직인다. 찰칵.
물체가 잠시 사라진 사이 모니터 화면 속 결과물을 확인했다. 잘 모르겠는데. 화면을 최대한 확대해 본다.
눈은 다시 렌즈로 돌아왔다. 찰칵, 찰칵, 찰칵. 표적을 바라보는 눈매가 더 매서워졌고 손놀림은 빨라졌다. 여전히 하얀 입김을 뿜어내는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진부가 단독 사진을 들고 왔다, 심장이 뛰었다
밤 10시 30분. 다음 마감시간까지는 1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지면 편집은 순조로웠다. 새로 들어온 사진은 없는지 모니터를 체크하고 검찰 쪽에서 나온 뉴스가 있는지 살펴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네. 오늘 제가 1면인데요. 네? 확실해요? 사진부터 보여주세요. 네."
사진부 야근을 맡은 선배였다. 조사받는 우병우 사진을 찍었다고? 검찰 조사실을 어떻게 찍었다는 거지? 궁금증도 잠시, 선배가 사진을 들고 달려왔다.
"이 사진들인데, 한 번 봐봐."
A4 용지에 컬러로 인쇄된 사진 3장이 책상 위에 펼쳐졌다. 원본과 확대된 사진, 그리고 조금 다른 장면을 찍은 사진이었다. 화질은 좋지 않았다.
"우병우 맞네요. 밤에 망원(렌즈)으로 찍어서 선명하진 않은데… 뭐야, 이거 팔짱 낀 거 맞죠? 표정이… 웃고 있네?"
조사실 안에는 검찰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고 맞은편 책상에 걸터앉은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낀 채 웃고 있었다.
"제대로 걸렸지?"
"이거, 1면 바꿔야겠는데요."
이날은 일요일이었다. 편집부장에게 전화하고 편집국장에게도 보고했다. "좋아. 바꿔." 교체 지시가 떨어졌다.
사진부 후배가 어렵게 찍어온 사진이었다. 특종 사진을 받아 든 편집자의 역할은 오직 하나, 지면에서 사진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기사도 제목도 기꺼이 희생시켜야 한다. 이날 편집자가 '우병우 팔짱 사진'을 위해 지면에 실행한 조치는 세 가지였다.
첫째, 어둡고 거친 원본 사진에서 표정을 최대한 살렸다. 어둠 속에서 망원렌즈로 찍은 원본 사진은 건물 속 세 사람을 겨우 구분할 정도였다. 신문 인쇄용 사진은 디지털 매체에서 쓰는 사진보다 용량이 크고 화질도 좋아야 한다. 거친 사진을 무작정 확대했다가는 인쇄했을 때 화상이 망가지게 된다.
"얼마나 확대할 수 있죠? 세 사람이 화면에 꽉 찼으면 좋겠는데, 웃는 표정도 살려야 하고요."
디지털 사진을 아날로그 신문에 맞게 바꾸는 작업은 사진부가 아닌 화상부가 담당한다. 전화를 받은 화상부 야근자는 전송된 사진을 체크하더니 망설였다.
"용량이 커서 확대는 가능한데… 윤곽이 많이 뭉개지겠는데…."
"그래도 최대한으로 부탁드릴게요."
"일단 작업해서 보내볼게요."
이것이 화상부와의 첫 통화였다.
(2)"조금 더 밝게는 안 될까요?"
(3)"방금 작업한 사이즈에서 20% 더 확대해주세요."
(4)"우병우 안경이 잘 안 보여요."
(5)"얼굴선을 더 살려주시죠."
(6)"조금만 더 선명했으면 좋겠어요."
모두 여섯 번의 통화와 다섯 번의 재수정을 거쳤다. (이날 화상부의 야근자 또한 완벽을 추구하는 분이었다.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둘째, 사진을 사실상의 1면 톱으로 올렸다. 이날의 톱기사는 야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언급했다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과 방송에 보도된 뉴스였던 반면 사진은 우리 단독이었다. 내일 아침 어느 쪽이 화제가 되겠는가. 기사를 희생시키자. 톱기사를 2단(기사의 열을 차지하는 가로 공간. 조선일보의 1단은 5.6cm 크기로, 신문 전체는 가로 6단으로 구성된다)으로 줄여 왼쪽으로 밀어붙이고 사진을 오른쪽 4단 톱으로 올렸다. 바뀐 레이아웃을 본 편집국장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그래도 사진이 더 인상적이지? 그래, 이렇게 가보자."
셋째, 검찰 수사 기사의 제목을 사진에서 뽑았다. 기사엔 그날 오전에 있었던 '우병우의 레이저'는 묘사됐지만 조사실 상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제목은 기사의 내용에서 뽑지만 이날은 달랐다. 사진이 기사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제목도 짧고 강렬하게 가자.
처음엔 그렇게 달았다. 그런데 지면에 넣고 보니 너무 튄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진도 강하고 제목도 강하면 서로 부딪친다. 양쪽 모두 효과가 반감하는 것이다. 제목의 톤을 조금 낮춰야 했다.
사진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제목을 바꿨다. 그날은 그렇게, 기사도 제목도 사진을 위해 희생했다.
#편집자는 지면 뒤에서 웃는다
"아예 톱기사 자리에 사진을 넣지 그랬어." "제목이 좀 밋밋하지 않나?" "좀 더 임팩트를 줘도 됐을 텐데." 다음 날 조선일보의 1면 사진은 화제가 됐고, 박수를 치면서도 몇몇 선배들은 편집적인 아쉬움을 지적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누가 묻는다면, 그 지면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최선이었다고 나는 답하고 싶다. 기사가 그렇듯 사진의 편집에도 적정한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편집자의 의도가 지나치게 부각되고, 과장한 듯 보이고, 사진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그날은 그 경계를 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면의 결과가 좋으면 종일 식은땀을 흘렸더라도 편집자는 즐겁다. 특종 사진이 실린 지면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웃고 있을 세상의 모든 편집자에게,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마음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