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0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의 탄핵 소추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탄핵 소추를 '촉구'한 지 하루 만이었다. 민주당은 "판사들의 자정 노력에 침묵하는 것은 국회의 직무 유기"라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사법부 내에서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가 나온 것을 높게 평가한다"며 "소장 판사들이 제안한 법관 탄핵 소추를 국회가 적극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법부 개혁에 뜻을 함께하는 야당과 탄핵 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과 긴급 간담회를 갖고 법관 탄핵 소추를 추진하기 위한 당내 준비를 본격화했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이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사위를 중심으로 (탄핵) 실무 준비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탄핵 대상 법관들과 규모에 대한 얘기도 구체적으로 나왔다. 송 의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도 있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징계를 청구한) 13명 법관의 징계 요청 자료도 있다"며 "관련 내용(탄핵 대상자)을 가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앞서 6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 13명을 법관징계위에 회부했다. 그러나 징계위는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징계 절차를 중단했다. 대법원은 13명 명단을 비공개에 부쳤으나 언론 취재 등으로 일부가 공개되기도 했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언급된 사람은 90명이 넘는다. 적어도 대법원이 스스로 징계하려 했었던 13명 정도의 법관은 누가 봐도 (탄핵 대상이) 분명하다"며 "시민단체에선 6명 정도는 확실하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과 법조계에서는 민주당이 검찰 공소장과 현 대법원장 징계요청서를 기준으로 탄핵 대상 법관들을 가리겠다고 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두 문서(공소장과 징계 요청 자료)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시각과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를 적폐로 모는 현 김명수 대법원장 측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반영돼 있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돌고 도는 것인데 국회와 사법부가 서로 얽혀 난장판이 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벌써 '탄핵 소추 위원' 구성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국회에서 법관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헌재는 탄핵 심판을 진행하게 된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검사' 역할인 탄핵 소추 위원을 맡게 되는데, 현 법사위원장은 자유한국당 소속 여상규 의원이다. 여 의원은 판사 출신이기도 하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여상규 의원은) 법원에 대한 무한 신뢰를 가지고 있고 '사법 농단은 없었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그분이 소추 위원이 되신다면 헌재 심판이 제대로 진행될 것인가"라고 했다. 법사위원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도 "야당과 협상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소추 위원 구성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는 말이 나왔다.

여당에선 이전부터 법관 탄핵 소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9월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사법 농단'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위법 행위가 드러난 법관에 대해 탄핵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원내 지도부에 정식으로 전달했다. 지난달 법사위의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선 백혜련 의원이 "사법 농단 사건은 탄핵을 하고도 남을 사안"이라고 했고, 조응천 의원도 "판사 탄핵을 하지 않고는 (사법부) 자정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이 권순일 대법관 등 현직 법관 6명의 탄핵 소추안을 만들어 공개했을 때에는 박주민 최고위원이 함께 기자회견에 나섰다. 야권에선 "민주당이 오랫동안 기획한 탄핵 구상을 민변이 뒷받침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최종 승인해준 모양새"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등 친여(親與) 단체들도 법관 탄핵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달 초 민중당은 전·현직 판사 47명의 이름과 사진, 근무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민중당은 과거 통합진보당 계열 인사들이 만든 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유죄가 확정된 이석기 전 의원 '석방 투쟁'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