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삭 부서지는 프랑스 원조 '사블레'VS덩어리진 쇼트닝의 맛 '사브레'
1975년 출시된 국산 '사브레'... 추억의 맛이지만 품질 아쉬워

해태 ‘사브레’(왼쪽)와 프랑스 생미셸 브랜드 ‘사블레’.

여름이었던가. 편의점에서 우연히 한 과자를 발견했다. 지인과 기분 좋게 맥주 한 잔 마시고 귀가하다 뭔가 허전해서 들른 걸음이었다. 과자의 이름은 ‘팔레(palet)’였지만 포장의 그림은 영 ‘사블레’ 같아, 진열대 앞에 선 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팔레란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사블레를 일컫는 단어였다. 일반적인 사블레와 비교하면 반죽을 틀에 넣고 구워 반듯한 원반 모양을 지니는 동시에 좀 더 사뿐하고 가볍다. 애초에 ‘팔레’라는 단어 자체가 ‘원반’을 의미한다.

정보를 찾고 나니 과자의 맛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경우 음식의 이름이나 어원에 조리법이나 원리부터 맛에 이르는 실마리가 숨어 있다. 사블레는 프랑스어로 ‘모래’를 의미하고 영어로 치면 빵부스러기(breadcrumb)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세비녜 부인(1629~1696)의 편지에 의하면 1670년, 역시 프랑스 북서부의 사블레-쉬르-사르트에서 처음 만들어져 이름을 따왔다는 이야기도 곁다리로 전해 내려온다.

역사며 어원이 등장했다. 인문학 특히 문화사 위주의 음식 컨텐츠가 인기를 누리는 한국에서도 환영 받을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사정은 좀 다르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여기까지 알아보고 끝낸다. 과자의 본격 혹은 본질적인 사연은 운도 못 떼었는데 말이다. 흙과 달리 모래는 수분이 없어 뭉치지 않고 부슬부슬 떨어진다. 이름을 따온 사블레 또한 수분이 적은 반죽을 구워 조직은 부슬부슬, 질감은 버석버석하다. 제과제빵의 필수 재료인 계란도 수분이 많은 흰자를 뺀 노른자만 쓰는데, 내가 즐겨 굽는 레시피는 아예 한 단계 더 나아가 계란을 삶은 뒤 노른자만 꺼내 쓴다.

◇버석버석하지만 뻑뻑하지 않고 부드러워

수분을 대체로 회피하지만 이름에 충실한 사블레라면 버석버석할지언정 뻑뻑하지는 않다. 버터의 지방이 촉촉함과 부드러움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지방은 밀가루 반죽의 탄성을 책임지는 단백질인 글루텐의 사슬을 짧게 끊어 사블레가 바삭함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 준다. 이런 용도로 제과제빵에서 쓰는 버터를 ‘쇼트너(shortener)’라 일컫는다. ‘사블레’라는 과자 이름 하나를 찾아 끌어 당겼더니 잔디 뿌리처럼 요리의 세계가 이것저것 딸려 올라온다. 결국 스코틀랜드의 ‘쇼트브레드(shortbread)’를 필두로 프라이드치킨과 함께 먹는 미국 남부식 비스킷까지 같은 원리로 만든, 부슬부슬한 과자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요즘은 썩 건강하지 않은 지방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쇼트닝(shortening)’을 사족처럼 소환하면 사블레로 시작한 제과제빵의 한 갈래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된다.

‘사블레’가 부슬부슬 버석버석한 과자라면 ‘사브레’는 어떨까? 한국 대량 생산 과자류의 고전 가운데 하나 말이다. 마침 사블레 근처에 놓여 있어 반가운 마음에 같이 사들고 들어왔다. 포장에 의하면 1975년 부터 만들었다고 하니, 수능 1세대-여름과 겨울에 유일하게 두 차례 치른-인 나와 동갑인 셈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맛을 보면 반가움이 조금 가신다.

팔레 혹은 사블레가 흩어질 것 같은 입자를 가볍게 아울러 놓은 느낌이라면, 사브레는 애초에 덩어리로 뭉쳐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더 바삭할지언정 사블레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부슬부슬 떨어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먹다 보면 이와 입천장에 달라 붙어 다소 불쾌해진다. 마지막으로 지방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사블레는 대량생산에 적합하도록 가루 형태로 가공된 버터로, 사브레는 쇼트닝으로 만든다. 많은 음식 및 식재료를 놓고 취향 논쟁이 벌어지지만 버터와 대체 지방은 그런 논쟁을 초월하는 품질의 격차를 보여준다. 설사 지식이나 정보가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맛의 차이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두 과자 사이의 가격 차이가 큰가? 그렇지도 않다. 사브레는 70g들이 한 상자 권장소비자가 1200원이지만 마트에서 1000원에 구입했으니 1g당 14원 꼴이다. 팔레는 편의점에서 62.5g에 1500원이니 1g당 24원 꼴이지만 인터넷에서는 17원으로 격차가 줄어든다.

이렇게 가격 차이까지 살펴보고 나면 심경이 조금 복잡해진다. 동갑이기까지 한 어린 시절 추억의 과자이건만 정작 맛을 보면 기억만큼 즐겁지 않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슬픈데 명칭 등으로 보편화된 원래의 조리 문법과 다를 뿐더러 재료의 한계 또한 너무 분명하다는 사실마저 사무친다. 요즘 표현을 쓰자면 ‘팩폭(팩트 폭격)’ 혹은 ‘뼈 때리기’ 수준이다.

'오리지널'과 맛 다르지만 그리운 추억의 맛

그래서 추억의 과자를 몰아내기라도 하자는 말인가? 그럴리 없다. 음식의 정서적인 가치를 어떻게 무시하겠는가. 박찬일 셰프는 아예 책의 제목을 ‘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고 지었으며,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저서 ‘식탁 위의 철학’ 전체를 통해 육체만큼이나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음식의 의미를 고찰한다.

따라서 ‘사브레’는 보전하되 세월이 흘러 ’사블레’와의 사이에 간극이 존재함을 받아 들이고 그 사이를 조리법과 재료 면에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국산 공산품으로 채우기를 바란다. 지식과 정보를 자양분 삼아 꾸준히 성장하는 소비자도 그렇지만, 그보다 수입품의 득세와 맞물려 입지가 조금씩 좁아지는 국산 과자 자신에게 더 중요한 사안이다. 정서적 가치로도 극복할 수 없는 맛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 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