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2월 11일 조선 26대 국왕 고종이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갔다. 문화재청은 올 10월 "주한 미 대사 관저와 선원전 터 사잇길이 고종 일행이 공사관 도착 직전 지나간 길"이라며 '고종의 길'이라고 명명하고 복원했다. 이 길이 아관파천 때 고종 일행이 간 길이라는 것이다. 2016년 복원 계획을 발표하며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시대 미국 공사관이 작성한 지도에 '왕의 길(King's Road)'이라고 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대 지도와 옛 지도를 짜 맞춘 엉터리로 판명됐다(본지 11월 30일 A1, 2면 참조).
2년 전 당시 '왕의 길이 표시된 대한제국 시대 지도'를 공개하지 않았던 문화재청은 지난달 28일에야 본지에 해당 지도를 공개했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대 미 공사관 지도'와 정체불명 '현대 지도'는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지도들이다. 문화재청은 이제야 "왕의 길이 표시된 지도가 현대 지도임을 알고 있었다"고 '쿨하게' 답변했다. '그래서 뭐?' 하는 식이다.
'대한제국 시대 지도'에 '왕의 길' 표시가 있다면 아관파천 경로에 관한 유일무이한 사료(史料)일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이 발표가 오류임을 알면서도 공사를 강행했다. 지난달 30일 낮 문화재청이 낸 해명 자료에는 "설치돼 있던 물탱크는 해체하고"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물탱크가 1952년 이후 어느 시점에 주한 미국 대사관이 제작한 현대 지도에 나오는 'water tower'다. 'King's Road가 명기돼 있는' 대한제국 시대 미 공사관 지도가 사실은 현대 지도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지금 복원된 '고종의 길'이 대한제국 시대에 'King's Road'로 표기된 그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역사가 복원됐는가?
조선 광해군 때 만든 '선조실록'은, 선조가 즉위한 1567년부터 임진왜란 개전 직후인 1592년 4월까지 25년치 사료를 사관(史官)들이 불태우고 도망가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광해군 때 여당인 대북파가 만든 선조실록은 자화자찬과 야당 헐뜯기 일색이었다. 이 실록을 인조~효종 기간 다시 만든 책이 '선조수정실록'이다. 편집 책임자인 대제학 채유후는 "일세를 더럽게 먹칠한 부분에 대해서 바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더러운 기록을 채유후는 "신구본(新舊本)을 모두 보존하여 참고하도록 했다."(1657년 10월 5일 '효종실록')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고, 오류까지 보존하기. 역사를 기록하는 바른 태도는 이렇게 역사에 기록돼 있다.
속칭 '고종의 길' 조사부터 발표, 복원까지 문화재청이 보여준 행동은 역사 기록 방식에 어긋난다. 오류를 알고 있었고 수정하지 않았고 오류에 기초해 역사 복원을 강행했다. 이 또한 기록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