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가 2018 한국시리즈에서 업셋 우승을 했다. 2010년 이후 8년 만에 거둔 네 번째 우승이다. SK왕조의 역사가 희미해지는 순간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KBO리그 최강은 아니다. 이번 우승은 새로운 왕조를 향한 첫걸음이다. 몇 회에 걸쳐 V4의 장정을 짚어본다.
[OSEN=김태우 기자] “12월 5일 전에는 끝났으면 좋겠는데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룬 SK였다. 과정을 떠나 그 자체로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그 후 행보도 빨랐다. 새 감독을 선임했고, 새 단장을 선임했으며, 마무리캠프를 잘 끝냈고 대규모 구단 조직 개편까지 마무리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큰 과제가 남아 있었다. 전력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 미해결 상태였다. 최정(31)과 이재원(30)의 프리에이전트(FA) 협상이 더디게 흘러갔다. 구단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SK는 일찌감치 외부 FA 영입 전선에서 철수했다. 이런 전략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수립되어 있었다. 최정은 SK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자존심이었다. 이미 첫 번째 FA 당시 SK는 금액으로 그들의 확고한 생각을 과시했다. 이재원도 잡는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단장이었던 염경엽 감독은 지난해 11월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이재원에게 “기본만 하면 우리는 너를 무조건 잡는다”고 약속했다. 이재원은 뛰어난 시즌을 보냈고, SK는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전력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였다. 최정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3루수다. 2016년과 2017년 홈런왕이기도 했다. 올해 그렇게 부진하다고 했지만 OPS(출루율+장타율)는 0.915였다. SK에서는 전력상으로나 상징성으로나 대체가 불가능한 자원이었다. 이재원도 마찬가지였다. 주전 포수로 체력 소모가 극심했던 상황에서도 130경기에서 타율 3할2푼9리, OPS 0.919를 기록했다. 타율 3할 이상, 출루율 4할 이상, 장타율 0.500 이상이었다. 리그에서 이만한 포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SK는 공격적으로 달려들었다. 최정은 오랜 기간 운영팀에서 일하며 협상 노하우가 풍부한 손차훈 단장이 담당했다. 이재원은 김광현 FA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낸 바 있는 구단 최고 전략통 류선규 팀장이 파트너로 나섰다. 하지만 초반에는 좀처럼 급물살을 타지 못했다. 유독 더디게 흘러가는 시장 상황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몸집이 큰 대어들과의 생각 차이를 좁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SK도 정해진 예산이 있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고 해서 무한대 지갑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시장에서 오버페이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팀이다. 이번 협상에서도 ‘합리성’과 ‘진정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내세웠다. 한편으로는 이제 공식적으로 에이전트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다소간 미지수가 있었다.
진정성은 충분히 설명을 했다. 협상 초기 단계부터 “우리 팀은 이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정과 이재원은 협상 시작 전 일찌감치 “팀에 남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협상 전략 측면에서 그다지 바람직한 행동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SK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문제는 합리성에 대한 서로의 생각 차이였다. 이는 협상 과정에서 언제나 겪는 일이다. 첫 제시액은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었다. 최정은 1차 FA 당시보다 적은 SK의 제시액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재원은 격차가 더 컸다. 에이전시도 감정을 내세우기보다는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하고 있었다. 담당자 모두 에이전시의 태도에 호평을 내리면서도 양보할 부분은 양보를 해야 했다. 그때부터 구단 내부에서는 “협상이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두 테이블 모두 돌파구를 만들었다. 손차훈 단장은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에이전시에 “선수를 한 번만 만나게 해 달라. 절대 금액은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부탁했다. 이재원의 경우는 류선규 팀장이 거의 매일 에이전시와 연락하며 생각 차이를 줄여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협상까지 에이전시와 만난 횟수만 10번이 넘었고, 전화 통화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접촉을 이어갔다. 연락만 따지면 이재원은 부동의 FA 시장 챔피언이었다. 설득하고, 양보하는 수순이 이어졌다.
손 단장은 “면담을 오래 하지도 않았다. 딱 30분 했다. 돈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면서도 “우리의 생각을 선수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이재원 테이블도 전체적으로 교감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SK의 제시액이 상향됐고, 총액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다. 이재원은 당시 “금액을 떠나 신경 써주시려고 하는 모습이 잘 느껴졌다”고 고마워했다.
SK의 4년 제시액에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최정은 SK를 떠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결국 에이전시와 합의해 6년 계약안을 내놨다. 손 단장은 “최정이 먼저 6년 계약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구단도 이미 6년 계약에 대한 안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계약 기간에 합의하자, 나머지는 급물살을 탔다. 손 단장은 “우리와 끝까지 가자고 했다. 100억 원이라는 금액에 상징성도 있었다”고 6년 106억 원 계약이 탄생한 배경을 밝혔다.
최정은 손 단장과의 면담 후 아내와 아버지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심을 설명했다. 사실상 거기서 끝이었다. 최정의 계약이 끝난 뒤 이재원도 결단을 내린 듯 움직였다. 마지막 이견차는 이재원이 양보했고,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는 이재원의 속 깊은 생각을 들은 구단이 양보했다. 4년 총액 69억 원의 계약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류 팀장은 “협상 과정에서 이재원이 팀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두 선수 모두 12월 1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구단 팬페스트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동료들의 얼굴도 보고, 팬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협상 과정상 그럴 수는 없었다. 최정은 경기장까지 왔다 조용히 돌아갔다. 이재원은 1일에도 “SK에 남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었지만, 마음만 함께 할 뿐이었다.
하지만 12월 5일 구단이 주최한 가족 동반 행사에는 두 선수 모두 얼굴을 드러냈다. 오전에 계약한 최정이 참석했고, 이재원은 협의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 행사장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었다. 구단 관계자들도 이재원의 방문에 놀랄 정도였다. 모든 선수들과 그 가족이 모인 12월 5일, 팀의 주장과 간판스타도 함께 했다. 완전체가 된 행사장은 SK의 2018년 정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결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