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종빌딩이 지난 12일 건물 안전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고 13일 자정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E등급은 건물이 심각하게 노후해 철거가 시급한 수준이다. 이 건물은 불과 9개월 전 강남구가 실시한 안전 점검에서 최상 등급을 받았다. 육안에 의존하는 현행 건물 안전 점검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강남구에 따르면 구는 지난 3월 건축사 9명과 함께 대종빌딩을 포함한 건물 700여곳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당시 현장에 간 구청 관계자와 건축사 등은 건물 수백 곳의 외관만 보고 '점검'을 완료했다. 그 결과 대종빌딩은 안전 진단 등급 중 최상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이들은 대종빌딩 외에도 점검 대상 건물 700여곳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추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건물은 단 한 곳이었다. 이에 대해 구 관계자는 "국토교통부의 지침(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실시 등에 관한 지침)에 건물의 외관 수준을 점검하도록 돼 있다"며 "건물 700곳을 일일이 뜯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강남구 측은 앞서 지난 12일 "3월 진단 때 대종빌딩 안전 등급은 B등급"이라고 밝혔으나 이날 "다시 확인해보니 A등급"이라고 정정했다.
지난 3월 점검 전까지 대종빌딩은 '15층 이하 소규모 시설물'로 분류돼 법적 안전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16층 이상 또는 연면적 3만㎡ 이상 건축물은 정기 안전 점검과 정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정밀 진단 때는 각종 특수 장비를 동원해 건물의 안전도를 측정한다.
'눈가림 점검'에만 맡겨졌던 대종빌딩이 정밀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8일 인테리어 공사 도중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고 나서였다. 이상을 확인한 빌딩 측이 민간 업체에 정밀 진단을 의뢰했다. 구 관계자는 "준공 15년이 넘은 민간 건물은 2년에 한 번씩 자체 육안 안전 점검 결과를 제출받아왔다"며 "지난 2월 대종빌딩 측으로부터 받은 결과에서도 특이 사항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건축구조기술사를 동반한 정밀 점검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국토부 지침은 '건축사 이상 전문가와 동행'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한용섭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부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건축사는 안전 진단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구조상 위험성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정밀 안전 진단 경험을 갖춘 구조기술사가 점검해야 균열의 양상을 보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불과 수 명이 수백 곳을 점검하게 되면 수박 겉핥기식 점검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점검 인원을 늘리고 점검 대상도 세밀화하도록 지침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1년 준공된 대종빌딩은 지하 7층, 지상 15층 규모 건물이다. 지난 11일 2층에서 4층까지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 안쪽 철근에서 시멘트가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가는 등 부실시공 정황이 발견됐다.
강남구 관계자는 "오는 16일까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층별로 20개씩 지지대를 설치하고 정밀 안전 진단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