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씨본관협회 김형선 대표는 지난 3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남성은 "가족관계등록부를 뗐는데 내 성씨와 본관은 정선전씨(旌善全氏)인데 아들은 선선전씨(旋善全氏)로 돼 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정선전씨는 신라 시대 인물인 전선(全愃)이 시조다.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 16만6965명이 있다. 반면 선선전씨는 2000년까지는 없다가 2015년 통계청 조사 때 처음 등장했다. 전국에 8858명이 있다. 김 대표는 "손으로 쓴 호적부(가족관계등록부)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정(旌)과 선(旋)을 헷갈린 것으로 보인다"며 "403명이 있다고 돼 있는 시선전씨(施善全氏)도 관청 오기(誤記)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는 인구주택총조사를 하면서 15년마다 한국에 있는 성본(姓本·성씨와 본관)을 조사한다. 1985년 조사에서는 한국에 있는 성본이 4168개, 2000년에는 4179개였다. 15년간 11개 늘었던 성본은 2015년 조사에서 3만6744개로 8배 넘게 늘었다. 2000~2015년 사이 갑자기 3만개 넘는 새 가문이 출현한 셈이다. 2016년 이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이 새 성본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이 새 성본을 만드는 경우도 많다. 독일이씨(獨逸李氏)의 시조(始祖)인 이참 전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대표적이다. 해당 성본을 쓰는 사람이 5명 미만인 2만2177성본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5년 새로 등장한 성본 가운데 상당수가 공무원 실수 때문"이라는 게 김 대표의 주장이다.
정부는 수기로 적었던 호적을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산화했다. 시청·구청·군청 등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이 호적에 적혀 있는 한자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애초 호적에 잘못된 한자가 적혀 있었거나 공무원들이 한자를 잘못 입력해 새 성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천이씨(全川李氏)가 2000년까지 없다가 2015년 178명 생겨났다. 전천이씨는 각종 성본 사이트나 인터넷으로 검색되지 않는다. 외국인이 새 성본을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전주이씨(全州李氏·263만1643명)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주(州) 자와 천(川) 자를 헷갈렸을 가능성도 있다. 2015년 기준 2만2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야성송씨(冶城宋氏)들 중에 실제로는 치성송씨(治城宋氏·2444명)로 잘못 기록된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5년 갑자기 등장한 삼섭김씨(三涉金氏·1182명), 탐율최씨(耽律崔氏·231명)도 비교적 알려진 삼척김씨(三陟金氏), 탐진최씨(耽津崔氏) 등과 비슷한 한자를 쓴다.
2015년 처음 등장한 최(催)씨도 비슷하다. 경주최씨(慶州催氏·2706명), 전주최씨(全州催氏·1268명)는 2015년 조사 때 등장했다. 최(催)는 중국인 성씨 가운데 있지만 쓰는 사람이 극소수라고 한다. 최(崔) 옆에 적힌 다른 표시를 담당 공무원이 '사람인 변'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000년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성본 조사 방식 차이도 이런 오류에 한몫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는 방문 전수조사 형식으로 이뤄졌다. 반면 2015년에는 전산상 등록된 가족관계등록부 자료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으로 성본 조사가 이뤄졌다. 가족관계등록부 오기가 그대로 잘못된 통계로 이어진 것이다.
일반인들은 성본이 잘못돼 있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2008년 호적이 가족관계등록부로 바뀌었고, 현재 본관은 이름 옆에 한자로만 표시된다. 정선전씨는 '旌善'으로 돼 있어 한자를 잘 모르면 글자가 잘못돼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성본을 문서로 확인하는 경우도 족보를 만들 때 등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는 점도 오류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행정 실수로 잘못 기재된 성본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김형선 대표는 "귀화한 외국인들이 만든 성본을 제외하고 추산했을 때 이런 오기가 수천 건에 이르리라고 보인다"며 "지금이라도 잘못된 기록이 없는지 점검해 국민의 뿌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성본을 바꾸려면 재판을 거쳐야 하지만 단순 오기는 본적지 관할 가정법원에 신청하면 고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