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마다 5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올라오는 유튜브. 말 그대로 무한 경쟁 전장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유튜버는 '띠예'란 아이디를 쓰는 열한 살 소녀. 말 한마디 없이 4분여간 바다포도(포도처럼 생긴 해초)를 먹는 영상의 조회 수는 1000만. 지난해 11월 유튜브를 시작한 후 동치미 무나 과자를 먹는 3~4분짜리 영상을 올리는 그의 영상을 받아 보는 구독자만 70만 명이다.
이 기간 띠예만큼 화제가 된 말이 '띠예 저격'. 인기 유튜버가 된 그를 욕하거나 신고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영상을 만들어 띠예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유튜버 A는 "감히 어린 초딩 주제에? 양심이 있으면 유튜브 계정 삭제해라. X가지가 없다. 정신 좀 차려" 같은 내용을 담은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띠예 공격 글로 화제가 되며 20만 번 이상 시청됐다.
초등학생인 띠예를 상대로 성희롱 발언도 이어졌다. 유튜버 B는 방송에서 "저랑 띠예님이랑 열두 살 차이라고 들었다. 이 정도 나이 차면 가능할 것 같다"는 말을 해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그러나 이 영상과 유튜버 역시 화제가 됐다.
'싫다'는 감정을 폭력적으로 분출하는 혐오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엔 되레 '싫어해야 돈이 된다'는 얘기가 퍼지며 '혐오 비즈니스'란 말까지 나왔다. 시청 횟수가 고스란히 수익으로 연결되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이 온라인의 중심이 되면서 '관심 끌기'가 이제는 아예 노골적 비즈니스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욕이나 폭력, 엽기, 성적 묘사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보는 사람들도 '욕하면서 본다'며 점차 수위가 더 센 콘텐츠를 찾고 있다.
세고 자극적인 것에 '좋아요'
혐오란 말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2013년쯤.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가 마포대교에서 투신하며 남혐(남성 혐오), 여혐(여성 혐오)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남녀 간 갈등이 도드라지면서, 혐오란 말은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한남, 김치녀, 맘충, 틀딱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혐오하는 수식어가 붙었다.
유튜브 등 영상 매체의 발달은 기름을 부었다. 혐오가 유머 코드의 하나로 자리 잡으며 관련 콘텐츠가 유통,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3시간가량 유튜브를 본다는 권우영(23·가명)씨는 최근 '외제차에 혹해 떠났던 전 여친 참교육' '김치녀 엿 먹이기' '한남충 저격' '6.9㎝의 진실' 등과 같은 영상을 봤다. 권씨는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사이다처럼 해주기도 하고 재미까지 더해져 영상을 본다"고 했다. 권씨뿐 아니라 수십만 명이 이런 류의 혐오 영상을 찾아 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선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것을 찾게 된다"며 "재미를 찾는다는 것은 점점 더 센 자극을 찾게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했다.
이런 식의 혐오 소비는 실질적 차별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말이 칼이 될 때'란 책에서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혐오는 표현 단계에 머물렀지만, 2014년 통일 토크 콘서트에서 일어난 황산 테러, 세월호 유가족 단식장의 폭식 투쟁 등은 혐오의 말이 실행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는 과거에는 없던 현상"이라고 했다.
조회 수가 곧 돈이라서
실제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혐오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2017년 남성과 여성 혐오 논쟁으로 시작된 '갓건배 사건'이 공개 살해 협박으로 이어졌던 것이 좋은 예. 갓건배라는 아이디의 BJ(Broadcasting Jockey)는 '키가 작은 남자는 죽어야 한다. 6·25전쟁 났을 때 다리 잘린 애냐'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김윤태라는 아이디를 쓰는 BJ는 "(후원금) 20만원 모이면 바로 (갓건배를) 찾아가서 죽이고, 10만원 모이면 자고 일어나서 (죽이러) 가겠다"며 실제로 그의 집을 찾아 나섰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나선 탓에 범죄는 실행되지 않았지만, 혐오 콘텐츠의 유해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혐오가 맹렬히 자라는 배경에는 돈이 있다. 유튜브는 조회 수가 곧바로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극적 소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유튜브에는 영상 재생 전이나 중간, 후, 재생 중 여러 방식으로 광고가 붙는다. 영상의 길이나 독자 수 등에 따라 광고 수익은 천차만별이지만, 유튜버가 55%, 유튜브 측이 45%가량을 가져간다. 구독자 30만 명가량을 확보한 후, 한 달 영상 조회 수 800만이 넘으면 월 1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수익은 콘텐츠 유해에 대한 규제나 감시보다 유능하다. 5·18과 여성 비하 발언으로 알려진 인기 BJ 철구는 9번이나 제재 조치를 받았지만, 아프리카TV에서 '특별사면'을 받아 돌아왔고 여전히 10~20대 사이 최고 인기 BJ다. 가학성 콘텐츠를 만들고 장애인 비하 발언을 한 이들도 서비스 업체를 옮겨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병폐가 생긴다는 이유로 무작정 플랫폼을 욕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계속된다면 조정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시청자들이 직접 BJ를 후원하는 아프리카TV는 1일 후원 상한선을 100만원으로 줄였다. 전에는 3000만원가량이었다.
손 놓은 플랫폼 사업자
그러나 유튜브 등 플랫폼 사업자는 방대한 영상량 등 현실적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 나와 "모욕적이고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조치를 하고 있다"면서도 "유튜브에는 1분마다 5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올라오고 있어 (부적절한 콘텐츠를) 관리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튜브 측은 하루 평균 10만 건 가까운 영상을 삭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테러나 인종 관련 발언, 아동 관련 성적 표현이 담긴 영상이 대부분이며 단순 욕설과 폭력적 내용은 규제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업계에선 유튜브가 광고 수익 등을 이유로 이런 구조를 고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천문학적 돈을 사용자와 나눠 갖는 법인 처지에서 굳이 규제를 강화해 수익을 줄게끔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와 모회사 구글이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얼마를 벌어 가는지는 정확한 내용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5조원가량으로 추산할 뿐이다. 구글은 해외 법인이기 때문에 유해 콘텐츠에 대한 행정 처분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외국처럼 혐오 콘텐츠가 올라오면 무조건 삭제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독일의 '네트워크시행법(NetzDG)'은 이용자가 200만명 이상인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업체 측이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극우 성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부당수 베아트릭스 폰 슈토르히 의원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야만적이고 윤간을 일삼는 이슬람 남성'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곧바로 삭제당했다. 소셜미디어 업체가 제때 삭제하지 않으면 벌금을 최고 5000만유로(640억원)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