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34)의 별명은 '작은 거인'이다. 키 152㎝인 그가 악기를 둘러메고 앞서 걸으면 거북이 등딱지처럼 상체를 뒤덮은 케이스 아래로 다리만 겨우 보인다. 그러나 국제 콩쿠르에서 아홉 번 우승을 휩쓴 실력은 '엄지 척'. 2007년 독일 하인스베르크 콩쿠르 1등을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콩쿠르를 석권했고, 2012년 세계적 권위의 스페인 알람브라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받았다.

지난 27일 서울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난 박규희는 “가늘고 길게 연주하고 싶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선생님처럼 수십 년 해도 팬들이 늘어만 가는!”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손에 든 기타는 프랑스 장인(匠人) 다니엘 프리드리히가 제작한 명품이다.

그가 다음 달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박규희의 스페인 기타 여행'을 떠난다. 최근 동명의 드라마에서 배우 박신혜가 연주해 화제가 된 '알함브라(스페인어 표기법으론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과 알베니즈의 '카탈루니아 기상곡' 등 스페인 기타 명곡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박규희는 "태어난 지 100년 된 클래식 기타는 사람들 말하는 소리와 데시벨(㏈)이 비슷해 온종일 들어도 시끄럽지 않다"며 "스페인 음악은 격정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친구에게 들려주는 소품처럼 온화한 맛이 있다"고 했다.

세 살 때 엄마가 취미로 기타를 배우는 데 따라가 처음 악기를 만졌다. 다섯 살 때 이미 하루 서너 시간씩 연습했고, 도쿄음대에 입학한 스무 살 이후론 하루 열세 시간씩 기타를 잡았다. 2006년 기타 명문인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로 유학 가 기타 명인 알바로 피에리에게 배웠다. 뉴욕 카네기홀(와일홀)에 데뷔했고, 도쿄 산토리홀에도 두 차례 섰다. "먹고 자고 씻을 때 빼면 기타를 놓지 않았더니" 왼손 새끼손가락은 바깥쪽으로 아예 휘어버렸다.

딱딱한 쇠줄인 통기타와 달리 클래식 기타 줄은 나일론이다. 손톱으로 바로 퉁길 수 있고, 음색도 따뜻하다. 다만 너무 예민해 손톱에 흠집만 나도 잡음이 생긴다. 그래서 박규희의 오른손 엄지 손톱엔 늘 본드칠이 돼 있다. "낚싯줄용 강력 본드를 립스틱처럼 넣어 다녀요." 서울에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 아는 곡 같아서 일부러 피했는데, 아는 후배가 드라마에서 대역 연주를 했어요. 되게 예쁘던데요. 저희는 아름다운 의상을 입지도 않고, 악기를 고정하느라 다리는 쩍 벌려야 하고, 하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깊이에의 강요'를 뜻깊게 읽었다. 유망한 젊은 예술가가 '당신 작품엔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듣고 '깊이'를 찾으려 애쓰다 자살하는 이야기다. "도대체 그 '깊이'란 뭘까요? 저도 한때 '어려서 깊이가 없다'는 말에 와르르 무너진 적 있어요. 지극히 주관적인 비평 단 한마디로 늪에 빠진 거죠."

"그래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했다. "다양한 감정을 내 안에 쌓기 위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감정의 서랍을 많이 만들어놓으려고요. 30대가 되니, 대가들의 '사랑해라. 지금 이 공기를 느껴라. 눈을 감고 살아 있는 느낌을 만끽하라'는 조언을 알 것도 같아요."

박규희의 스페인 기타 여행=2월 15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070-7579-3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