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정오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국숫집. '국수거리'라는 푯말에 가까운 가게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반면 100여m 떨어진 백반집은 손님들로 붐볐다.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온 고기영(58)씨에게 '왜 국수거리인데 국수를 안 드셨느냐'고 하자 고씨는 "여기가 국수거리인 줄 몰랐다"고 했다.

노원구청은 2012년 지하철 태릉입구역부터 이어진 길이 1.3㎞ 골목을 국수거리로 지정했다. 과거 동네에 벽돌 공장이 많았고, 바쁜 인부를 상대로 장사하는 국숫집이 많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재 골목에 들어선 식당 200여 곳 가운데 국숫집은 12곳뿐이다.

지난 13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국수거리에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2012년 지역 특화 거리로 선정된 공릉동 국수거리 상점 200여곳 중 국숫집은 12곳에 불과하다.

구청은 올해 국수거리 활성화에 예산 8억1500만원을 배정했다. 구청은 사용처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예산으로 3000원짜리 국수 할인 쿠폰을 배포했다가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국숫집에는 반짝 손님이 몰렸지만 다른 상인들이 반발했다. 식당 주인 최모(54)씨는 "국수 한 그릇 먹으러 멀리서 오는 사람은 드물고, 손님도 주변 직장인이 대부분"이라며 "당시에도 국숫집이 아닌 가게들은 손님을 뺏겨 매출이 일시적으로 줄었다"고 했다. 노원구청 관계자는 "다 같이 먹고살기 어려운데 '왜 내 세금으로 국숫집만 지원해주느냐'는 민원이 다수 들어와 지원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국수거리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지역 특화 거리는 현재 전국에 224곳 있다. 관광 활성화 정책의 일환이다. 푯말·동상을 세우거나 지자체 홈페이지, 언론을 통해 소개하는 등 홍보를 지원한다. 적게는 수천만원부터 수억원가량 예산이 들어간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기준 없이 마구잡이로 선정한 특화 거리가 오히려 지역 상권을 망친다"고 했다.

실제 '○○거리'라고 지정돼 있지만, 관련 매장이 10곳도 안 되는 곳이 많다. 정부의 공공 데이터 포털에 공개된 '전국 지역 특화 거리 자료'에 따르면 충북 영동군에는 길이 500m 거리를 따라 '와인 삼겹살 거리'가 조성돼 있다.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에 선정돼 예산 1억4900만원으로 거리를 가꿨다. 하지만 전체 70여 점포 가운데 고깃집은 8곳뿐이다. 이 중에는 삼겹살집이 아닌 오리고깃집, 숯불갈비집도 포함됐다. 경기도 광주의 '소머리국밥 거리'(관련 점포 8개), 충북 괴산 '매운탕거리'(8개), 제주 '국수문화거리'(11개)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먹을거리가 아닌 문화를 주제로 한 특화 거리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성동구청은 2016년 시비 3억원을 들여 왕십리 모텔촌 밀집 지역을 '여행자 거리'로 지정했다. '고유한 한국 정서를 가미해 여행자들이 매력을 느낄 공간을 만들겠다'는 게 사업 취지였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동상을 세우고 푯말, 포토존도 만들었다. 하지만 김정호는 성동구에 연고가 없어 논란이 됐다. 포토존 역시 모텔 바로 앞에 설치돼 "모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것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1일 오후 1시부터 5시간 동안 여행자 거리를 둘러봤지만,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1명뿐이었다. 근처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김복수(86)씨는 "주변 밥값이 싸서 점심때에 오는 직장인이 행인 대부분"이라며 "성동구민도 잘 안 오는데 관광객이 올 리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 특색을 살리겠다는 점에서 특화 거리 자체는 정책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지나치게 관(官) 주도가 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결국 남이 하니까 우리도 해보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