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19세에 불과한 대학교 1학년 때 평생 전공이 결정된다는 것이 너무하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는 '트랙(track)제'를 만들었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때문에 전과나 부전공 등을 고민하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대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맞춤형 전공을 찾지 못하면 직장도 적성에 맞는 않는 곳을 선택하게 돼 인생의 악순환이 된다.
이런 부조리와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한성대학교는 학생 중심의 '트랙제'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트랙제'란 쉽게 말해 정원 제한이 없는 다양한 '트랙'을 기존의 전공 대신 2개 이상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한성대학교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선도적으로 융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7년 국내 최초로 전면 도입했다.
학문-학제-학과 간의 장벽을 허물어 진정한 융합 교육을 실천하고, 사회 산업 수요에 대응 가능한 인재를 만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의도보다 더욱더 돋보이는 것은 수동적으로 정해진 전공 교육을 받기만 하던 학생들의 선택권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한성대학교는 지난 22일 오후 2시 교내 상상관 12층 컨퍼런스홀에서 전국 대학 관계자 30여 명을 대상으로 '2019년 제1회 HSU(Hansung University의 약칭) 교육혁신 성과 공유 세미나'를 열고 3년간의 트랙제 발자취를 조명했다.
세미나에는 이상한 총장, 조세홍 교무처장 겸 교육혁신원장, 노광현 기획처장 등 한성대학교 관계자를 비롯해 군산대, 덕성여대, 동국대(경주캠퍼스), 상명대, 연세대(원주캠퍼스), 한양대 등 전국 대학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공개된 한성대학교만의 학사구조 혁신 시스템 '트랙제'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2017년부터 한성대학교에서는 세부 전공 없이 단과대학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1학년 때 다양한 트랙을 경험한 뒤 2학년에 올라가면 입학한 대학에서 하나, 전체 대학에서 하나의 트랙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트랙제를 운영하고 있다.
단과대별로 일부 트랙제 전공 선택을 시행하고 있는 대학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 모든 학부, 세부 전공을 대상으로 경계 없이 전공 트랙을 선택하게 한 것은 한성대학교가 처음이다. 트랙 구성은 ▲크리에이티브인문예술대학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디자인대학 ▲IT 공과대학 등 4개 단과대학 내 50여 개 세부 트랙(전공)으로 구분된다.
조세홍 교무처장은 이날 발표자로 나서 한성트랙제의 도입 배경과 운영 방식을 소개하는 한편, 운영 결과 당면하게 된 현안과 앞으로의 과제까지 진단했다.
조 교무처장의 발표에 따르면 트랙제 최대의 매력은 역시 ‘역동성’이다. 트랙에는 정원 제한은 물론, 단과대학 간의 제한도 없고 얼마든지 전공을 ‘갈아탈’ 수 있다. 또한 교육 단위가 이전의 추상적인 전공에 비해 상당히 세부적으로 쪼개져 있어, 학생들의 선택권을 최대한 배려했다.
그는 “그동안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평생 전공을 정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너무 유연성이 부족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진정한 융복합 인재를 필요로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이런 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한 번도 실행해본 적이 없는 ‘전면 트랙제’를 만드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냥 학과마다 하나의 트랙을 만들어서 교차 전공을 자유롭게 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많지만, 한성대학교는 사회 수요에 대한 분석과 전문가 조언을 바탕으로 39학점씩을 이수해야 하는 각각의 트랙 50여 가지를 새롭게 구성했다. 학생들은 제1트랙 39학점, 제2트랙 39학점 이수로 두 가지 전공을 마스터할 수 있으며, 여기에 부전공(제3트랙)까지 더하면 세 가지 전공도 가능하다.
트랙제를 처음 도입했을 때 가장 먼저 우려가 됐던 것은 ‘쏠림 현상’이었다. 취업에 유리한 경영학과 등 일부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몰리고, 이 때문에 일부 트랙이 폐지 수순을 밟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 교무처장은 “2019년 초 학부별 융합 현황을 도출해 본 결과, 일부 트랙에 학생들이 편중되지 않고 생각보다 다양한 조합의 트랙을 골고루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긍정적인 결과를 제시했다.
또한 2016년 재학생의 복수 전공자 비율(4.3%)에 비해 2017년 신입생의 2개 트랙 선택 비율은 전체 36.5%로 급상승했다. 이는 타 학부의 트랙을 선택한 학생(20%)과 타 단과대학의 트랙을 선택한 학생(16.5%)의 비율을 합친 것인데, 트랙제 선택 학생 중 같은 학부 내에서 2개 트랙을 고른 경우는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실제 2개 트랙 선택 학생의 비율은 더 높다.
한성대학교 측은 트랙제가 학생들의 후회 없는 전공 선택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학생 진단검사 등 다양한 탐색 과정 및 교수 상담, 트랙제 설명회를 마련하고 있다. 조 교무처장은 “차별화된 학생 케어(care) 시스템이 없다면 트랙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신입생 대상 예비 대학 운영, 홈페이지의 트랙 가이드북, 각 트랙 진로 지도교수를 비롯한 전문적인 교수들의 상담 등이 이 시스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트랙 가이드북에는 특정 트랙을 이수했을 때 어떤 진로를 선택할 수 있고, 각 과목이 진로 설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어 취업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아직 3년 차에 불과한 트랙제는 아직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한 만큼 ‘완성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 교무처장은 “트랙제를 처음 접한 학생들이 이제 3학년이 된다. 현실적으로 대학에 대한 평가 잣대는 취업률인데, 과연 트랙제가 의도대로 융복합 인재를 양성해 취업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 우리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들이 고른 선택을 한다 해도 일부 비인기 트랙은 폐지될 수 있다. 그런 경우 해당 트랙 지도교수들이 떠안을 부담이 크다. 그 때문에 교수들 역시 트랙 폐지를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조 교무처장은 “트랙제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교수들이라 할 정도로, 우리 대학 교수들은 다양한 커리큘럼 구성부터 학생 진로 상담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뼈 있는 평가를 던졌다.
이상한 한성대학교 총장은 “한성대학교는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융복합 능력을 갖춘 미래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한성트랙제야말로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 변화에 대비하여 학생들의 역량을 최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열린 교육 시스템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참석자들은 세미나 이후 상상관 지하 2층에 마련된 한성대학교 트랙 부스를 돌며 각 전공 트랙 교수들과 상담을 진행해, 뜨거운 관심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