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대형 클럽 ‘버닝썬’을 중심으로 불거진 각종 범죄 의혹 때문에 ‘유흥 업계의 별’로 대접받는 클럽 MD도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버닝썬’의 홍보 이사로 활동했다는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그래픽 오른쪽)도 범죄에 연루된 혐의로 경찰 포토라인에 서야 했다.

"하드 6바. 5번 밑으로 잡아줘."

지난 2일 밤 11시 20분. 서울 강남의 한 클럽 직원 이모(29)씨의 스마트폰에 암호 같은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형님, 오늘 오랜만에 바닥 찼어요. 하드 6바에 7번 가능합니다. 언제 오시나요." 암호 같은 답장을 보낸 지 1분도 안 돼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ㅇㅇ. 대신 물게 3팀 개런티." 메시지를 주고받은 지 10분쯤 지나자 남자 5명이 클럽 앞에 도착했다. 이씨는 그들을 클럽 2층 댄스 플로어가 훤히 보이는 7번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는 "테이블 숫자가 낮을수록 좋은 자리에 위치해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직업은 이른바 클럽 'MD'. MD는 기업에서 상품의 기획 및 판매를 담당하는 머천다이저(Merchandiser)의 줄임말인데, 클럽업계에서는 손님을 유치하는 역할을 맡는 영업직원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 이씨가 손님들과 주고받은 메시지도 모두 클럽 MD들이 사용하는 은어다. '하드'는 보드카나 진 같은 증류주(hard liquor)를 가리키고, '6바'는 6병(bottle·보틀)이란 뜻이다. 클럽에서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 테이블석을 잡기 위해선 비싼 샴페인이나 증류주를 시켜야 한다. '하드 6바'라면 통상 190만~200만원가량을 낸다. '바닥이 찼다'는 말은 춤을 추는 공간인 댄스 플로어에 손님이 가득 찼다는 뜻이다. 테이블 좌석을 잡지 않고 그냥 들어온 손님은 '게스트'라고 부르는데 남자는 2만~3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여자는 무료 입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씨의 손님들이 말한 '물게'는 물 좋은 게스트, 즉 외모가 뛰어난 게스트를 뜻하는 은어다. 이씨는 "클럽 입장에서 게스트는 아무리 받아도 돈이 안 되지만 결국 '물게'가 많아야 '테이블 손님'도 몰린다"고 말했다. 이씨 같은 MD가 데리고 온 '테이블 손님'들이 곧 클럽의 매출로 연결된다. 즉, MD야말로 서울 강남의 청년 유흥 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클럽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소위 '유흥의 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 유흥의 별들이 최근엔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피의자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강남의 대표 클럽 중 하나였던 '버닝썬(burning sun)'에서 불거진 온갖 범죄 의혹의 중심에 MD들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잘나가던 클럽에서 마약·성범죄 온상으로

2017년 문을 연 '버닝썬'은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28·본명 이승현)가 경영에 참여한 덕분에 유명해졌다. 승리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방송을 탔다. 이 덕분에 손님이 몰리면서 단기간에 옥타곤·아레나 등 잘 알려진 기존의 대형 클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고속 성장했다. 하지만 작년 11월 이 클럽에서 보안요원들이 손님을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피해자 김모씨는 "클럽 MD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여성을 도우려다가 보안요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았다"며 "경찰에 신고했는데도 경찰은 오히려 클럽 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후 두 달간 이 사건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서히 퍼졌다. 경찰과 버닝썬 간에 유착 의혹이 불거졌고, 유명 연예인인 승리가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이어졌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청와대 청원글도 여러 건 올라왔다.

버닝썬에서 판매한 1억원짜리 ‘만수르 세트’. 최고급 샴페인으로 꼽히는 ‘아르망디’와 가장 비싼 코냑이라는 ‘루이 13세’ 등이 나온다.

특히 지난 1월 이 클럽의 MD였던 중국계 직원이 마약 공급책이었고, 클럽 안에서 마약 투약이 공공연히 이뤄졌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버닝썬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했다. 결국 경찰은 지난달 14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버닝썬을 겨냥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승리와 이 클럽 MD들이 투자자들을 상대로 성 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다룬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클럽과 승리 측은 마약 유통이나 성 접대 등 제기된 의혹 일체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버닝썬 대표 이모(29)씨와 승리 및 의혹에 연루된 버닝썬 MD들을 잇달아 소환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억원짜리 손님 유치하면 하룻밤에 3000만원 번다

클럽의 영업직원인 MD가 범죄 의혹의 온상으로 전락한 이유는 강남 클럽들의 기형적인 수익 구조와 관련이 있다. 클럽은 '테이블 손님'을 받아서 매출을 올리고, MD들은 자신들이 유치한 테이블 손님이 낸 돈의 15~30% 정도를 받아 챙긴다. 보통 강남 클럽의 테이블 시세는 최소 50만원에서 극단적인 경우 1억원까지 치솟는다. 버닝썬에서 1억원짜리 '만수르 세트'를 팔았는데 실제로 이 세트를 주문한 팀이 3팀가량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테이블 손님의 주 고객층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의 고소득 전문직이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40대도 꽤 많다는 게 MD들의 전언이다. MD 이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클럽 테이블을 잡기 위해 각자 돈을 모아 100만~200만원씩 만들어 오는 '조각' 모임도 많은데, 주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20대 남성들"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경우처럼 200만원짜리 테이블 손님 3팀을 받으면 하룻밤에 200만원가량 벌 수 있다. 옥타곤에서 3년간 MD로 일했다는 최모(30)씨는 "일주일에 금·토 이틀을 뛰면 보통 100만원 정도 벌었다"며 "대형 클럽에서 톱3 안에 드는 MD는 한 달에 기본 2000만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익 구조 때문에 MD 입장에선 돈을 많이 쓰는 사람을 단골로 많이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MD의 일은 본질적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강남에서 성업했던 나이트클럽 웨이터와 크게 다를 것 없지만, 그 수입 규모는 물론 영업 방식도 진화했다. 잘나가는 MD 중에는 연예인이나 모델, 심지어 유흥업소 종업원 등 주로 외모가 뛰어난 게스트 인맥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이를 평소에도 관리하는 이가 많다. 생일 파티를 열어주거나 수시로 선물을 주고, 때론 클럽을 빌려 자신의 인맥끼리 어울리게 하는 '네트워킹 파티'도 연다. 버닝썬에서 MD로 1년간 일했던 A(25)씨는 "유능한 MD는 결국 비싼 테이블 손님을 많이 끌어오는 MD"라며 "연예인급 미모를 가진 '물게'들을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을 가졌거나 마약 유통같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이들이 경쟁에서 승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형 클럽 중엔 잘나가는 MD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테이블 손님을 불러오는 MD와 '물게' 섭외 담당 MD, 이 둘을 서로 연결해주는 이른바 '픽업' 담당 MD가 협업하는 식이다. A씨는 "한번 오면 기본 수백만원을 쓰는 테이블 손님을 VIP라고 부르는데 이 VIP와 물게의 만남이 '성공적'으로 이어지는 걸 '홈런'이라고 부른다"며 "말이 좋아 홈런이지 이 과정에서 성범죄가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버닝썬을 비롯, 강남에서 운영 중인 5개의 대형 클럽에서 지난 6년간 발생한 사건·사고(총 286건) 중 약 40%가량이 성범죄나 마약 범죄였다.

탈세 창구로도 악용되는 MD

마약이나 성범죄 의혹으로 시작된 수사는 이제 탈세 등 다른 범죄 의혹 수사로 확대 중이다. 국세청은 작년에 아레나의 경영진이 총 260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포착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클럽의 탈세에도 MD가 동원됐다. 클럽 매출액에서 MD에게 나눠주는 몫을 2~3배가량 부풀리는 수법으로 매출액을 축소 신고한 것이다. 최씨는 "일부 클럽은 이중장부를 갖고 있는 걸로 안다"며 "보통 MD에게 나눠주는 매상을 '봉사료'라고 하는데 이걸 부풀려서 적는 가짜 장부를 세무서에 내고, 진짜 매상을 파악하는 데 쓰는 진짜 장부를 따로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세청에 고발된 것보다 아레나의 탈세 규모가 더 크다는 혐의가 있어 추가 수사 중"이라며 "아레나 외에도 강남 일대 클럽이 유사한 수법으로 탈세한다는 제보가 있어 강남권 대형 클럽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