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보〉(167~189)=패(覇)는 바둑판 위에서 전개될 수 있는 변화 중 최고 난도(難度)의 고등수학이다. 그 가치가 반 집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승부 결정의 열쇠를 쥔 경우가 더 많다. 팻감의 개수에 따라 판단은 어렵고 선택은 흔들린다. 패에 대한 집념으로 손해 팻감을 남발하다 패를 이기고도 바둑은 지는 경우도 흔하다. 패라는 마물(魔物)이 가세하면서 바둑 게임은 구현 가능한 변화의 지평을 천문학적으로 넓혔다.

승부를 건 필사적 패싸움이 우변서 이어지고 있다. 171은 끝내기 맥점인 동시에 팻감. 뒤이은 177의 끝내기를 팻감으로 겸하고 있다. 백이 듣지 않고 우변 패를 해소하면? 참고도 5까지는 일단 필연이다. 계속해서 6에 놓아 산 것 같지만 7로 먼저 끊는 수가 준비돼 있다. 9 이후 A와 B를 맞보게 되는데, 이것은 백이 우변 패를 이기고도 바둑은 흑의 승리다.

180 이후의 용패(用覇) 과정도 음미할 만하다. 흑백 모두 고수답게 절대 선수의 곳만 골라 팻감을 쓰고 있다. 패가 나지 않은 채 정상적인 끝내기에 들어갔더라도 이 수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89에서 마침내 손해 팻감이 등장한다. '가'의 붙임이 부분적으로 정수. (170 176 182 188…△, 173 179 185…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