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성 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 22일 밤 11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방콕행 티켓을 샀다. 다음 날 0시 20분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그는 출국심사대를 통과해 비행기를 타는 게이트 앞까지 갔다. 잠시 뒤 그를 쫓아온 법무부 직원이 "출국이 금지돼 나갈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검찰은 그가 출국 수속을 밟았다는 소식을 듣고 공항의 법무부 직원을 통해 곧바로 긴급 출금 조치를 했다.

23일 김학의(왼쪽) 전 법무부 차관이 긴급 출국 금지 조치로 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하자 선글라스와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인천공항을 빠져나오고 있다. 사설 경호원 2명이 그의 옆에서 취재진을 막았다.

김 전 차관은 다음 날인 23일 오전 5시쯤 공항을 빠져나왔다.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두툼한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경호원 2명이 그의 옆에 서서 취재진을 막았다. 그를 데리고 나온 한 남성은 김 전 차관과 외모가 비슷했다. "대역을 쓴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김 전 차관 측은 "방콕에서 돌아오는 티켓까지 끊었다. 도피가 아니었다"며 "외모가 비슷한 남성은 김 전 차관 아내의 친척"이라고 했다. 검찰이 피의자도 아닌 김 전 차관에게 무리한 출금 조치를 했다는 취지였다.

김 전 차관을 둘러싼 성 관련 의혹은 2013년 초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그의 혐의는 2007~2008년 3차례 성폭행했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2007년 4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주택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다. 그다음은 2008년 1월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여성을 상대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그해 3월 강원도 원주의 한 별장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다. 이 사례가 '별장 성 접대' 의혹으로 알려진 사건이었다. 이 별장은 김 전 차관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건설업자 윤중천씨 소유였다.

경찰은 그해 7월 김 전 차관이 윤씨와 함께 공동으로 여성들을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가 있어 그를 재판에 넘겨야 한다며 사건을 검찰에 보냈다. 그러나 검찰은 4개월 뒤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다. 동영상에 나오는 여성이 누구인지 정확히 조사가 되지 않았고,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이 "강간을 당한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는 것이었다. 이들 중에는 사건 이후에도 윤씨와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등 일반적인 성폭행 피해자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고 검찰은 말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도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이 김 전 차관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같은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법무부 과거사위는 작년 2월 이 사건을 '재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지금까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법조계 인사들은 "검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해 긴급 출금을 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3차 수사가 본격화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긴급 출금은 3년 이상의 징역형이 의심되는 피의자에게만 걸 수 있다. 검찰이 그를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로 규정하고 사실상 수사에 착수했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3차 수사'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이 사건을 "특권층 범죄"라며 "진상을 철저히 밝히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나흘 만에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금이 내려진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대통령 말 한마디에 검찰이 무리한 출금을 했다"는 말도 나온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다 해도 공소시효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검찰은 이번에 김 전 차관의 출금을 요청하며 그의 혐의를 두 개 적었다. 윤씨와 함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특수강간과 윤씨 사업을 뒤에서 도와준 대가로 성 접대를 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다. 과거 검·경 수사 결과, 김 전 차관의 범행 시점은 2007년 4월, 2008년 1월과 8월이다. 특수강간 범죄의 공소 시효는 2007년 12월까지는 10년, 이후는 법이 바뀌어 15년이다. 2008년 두 차례 범행에서 특수강간이 확인된다면 형사처벌을 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는 성 접대에 든 비용을 딱 잘라 계산하기가 어려워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 사건 수사 당시(2013년) 외압이 있었다는 증언은 꾸준히 나왔다. 이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A 총경은 본지 통화에서 "수사 총책임자였던 김모 경찰청 수사국장이 수사 기간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당해서란 걸 분위기상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해 4월 경찰 수사 라인이 대폭 바뀐 것도 청와대가 김 전 차관 수사에 책임을 물은 것이란 말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