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독일 바이마르에서 '국립 바우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1919년 4월 1일 36세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Gropius·1883~1969)가 제1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 세운 건축·디자인 전문학교다. 바우하우스란 '짓다(bau)+건물(haus)'이란 뜻. 그로피우스는 미술·디자인·공예·건축 등 모든 시각예술을 통합해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종합 예술을 만들고자 했다.
얇은 철재로 만든 의자, 독서용 램프, 조립식 주택, 기하학적 형태의 그래픽 디자인…. 이 모든 것이 바우하우스에서 탄생했다.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현대 건축과 산업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줬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독일은 지금 '바우하우스 축제 중'이다. 600여 개의 기념 행사가 쏟아지고 있다.
◇독일은 바우하우스 축제 중
지난달 28일 베를린의 브뢰한 박물관에선 '예술과 공예에서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전(展)이 열리고 있었다. 가구·금속 작품·도자기·그래픽 등 300여 점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탄생 배경을 보여주는 전시다. 큐레이터 토비아스 호프만씨는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50년 전 영국 미술공예운동에서 이미 시작됐다"며 "산업혁명으로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장인들은 혼란에 빠졌고 시대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미술교육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로피우스는 예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면서 학교는 공방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바우하우스엔 '교수'가 없었고, 중세 길드처럼 마스터(명인)와 도제의 형식을 따랐다. 철제 의자, 독서용 램프 등 바우하우스의 공방에서 탄생한 대표작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만든 '바실리 체어'는 안락의자의 혁신을 가져왔다. 자전거의 철제 프레임에서 영감을 얻어 의자에 최초로 강철 파이프를 썼다. 빌헬름 바겐펠트의 '바우하우스 램프'는 산업사회의 유리와 금속을 거실로 들여온 작품. 장식 없이 단순화하면서 재료의 실용성을 살렸다.
또 다른 전시장, 세계문화의집(HKW)에선 '바우하우스 이마기니스타(imaginista)'가 한창이다. 바우하우스가 세계 곳곳에 남긴 유산과 영향을 살피는 글로벌 특별전. 지난해부터 모로코·중국·일본·미국·러시아·브라질·나이지리아·인도 등에서 열린 전시 프로젝트를 모두 베를린으로 들여와 한 자리에서 펼치고 있다.
21세기 바우하우스 박물관도 줄지어 문을 연다. 바우하우스의 요람인 바이마르에서 6일 '바우하우스 박물관'이 개관한다. 바우하우스 14년 역사 중 가장 찬란했던 데사우에서도 9월 8일 새로운 박물관이 문을 연다. 세계 최대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소장한 베를린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은 9월 6일 베를리니셰 갤러리에서 '오리지널 바우하우스'를 개막한다.
◇"삶의 방식 바꾼 정신 혁명"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운영됐다. 하지만 이 14년간의 실험이 한 세기를 바꿨다. 건축평론가 볼프 폰 에카르트는 "오늘날 산업디자인의 양식을 창조했으며 현대 건축의 발명에 기여했다.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에서부터 읽고 있는 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모양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바우하우스 100주년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바우하우스 협회 2019'의 모토는 '세상을 재고하기(rethinking the world)'. 협회 사무국의 안드레아 브란디스씨는 "바우하우스는 단지 예술과 디자인의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한 정신 혁명"이라며 "기술, 표현 수단, 사고를 갖고 창조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했다. 그것이 100년이 지나도 유효한 바우하우스의 탐구 정신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