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조영수(43)는 서울 강남구청 인근 소속사 사무실에 있는 방 3개를 작업실로 쓰고 있다. 전자 건반과 PC가 겨우 들어가는 좁은 방 두 개와 피아노가 놓여 댄스 그룹의 간이 오디션도 가능한 넓은 방 하나를 수시로 오가며 작업한다. 이곳에서 'SG워너비' '박정현' '다비치' '씨야' 같은 발라드 가수들의 숱한 히트곡이 탄생했다.
지난달 28일 찾았을 때 피아노가 놓인 방 책상 위엔 '미스트롯 우승곡'이란 제목으로 음표를 휘갈겨 쓰다가 만 오선지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는 요즘 시청률 10% 돌파를 눈앞에 둔 TV조선 오디션 프로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미세한 음(音) 이탈도 잡아내는 족집게 심사위원(마스터)으로 사랑받고 있다. 미스트롯의 최종 우승자는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는 조영수의 곡을 선물로 받는다.
그는 2009년 '사랑의 배터리'(홍진영)로 트로트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이승철), '내 사람'(SG워너비) 같은 애끊는 사랑 노래를 만들던 그가 트로트를 만든 것 자체가 가요계의 뉴스였다. 그는 같은 해 음원 저작권 수입 순위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원래 R&B와 발라드가 전공이에요. 마침 SG워너비와 홍진영 소속사가 같아 트로트 작곡 의뢰를 받았는데, 그게 '대박'이 난 거죠." 하지만 장르에 대한 차별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는 "트로트도 세미 트로트, 댄스 트로트, '아모르파티' 같은 EDM까지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며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과거에 비해 덜 대중적인 '취향'들이 폭넓게 공유되는 것도 가요계에 일어난 큰 변화"라고 했다.
오디션 프로의 '원조'인 대학가요제 출신이다. 연세대 생명공학부 2학년 때 4인조 그룹을 결성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직접 작곡하고 보컬까지 맡았다. 군 제대 후 27세 때인 2003년 옥주현의 싱글 앨범 작업에 참여하며 데뷔했다. 그때 휴학한 학교를 지금까지 복학하지 못했다. "겨우 1년 남았는데…. 빨리 복학해서 졸업하라고 지금도 학교에서 독촉이 와요."
지금까지 만든 노래만 640여곡. 먹고 자는 것 말고 작업실에만 처박혀 지내며 일년에 70~80곡씩 만든 적도 있다. 그는 "힘든 줄 모르고 지냈는데 어느덧 마흔이 넘었더라, 결혼도 안 했다"고 했다. 공학도가 될 수도 있었지만 후회는 전혀 없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가다 라디오에서 한 중년 남성이 암에 걸린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내며 '내 사람'을 틀어달라고 신청한 사연을 듣고 울컥했어요. 음악을 한 것은 정말 잘한 일 같아요."
그는 미스트롯에 대해 "100인 예선에서 1대1 데스매치까지 대결 방식이 흥미진진하고, 참가자들도 모든 것을 다 걸었다는 기운이 팍팍 느껴진다"고 했다. 미용실이나 단골 식당 갈 때마다 '누가 우승하냐' '송가인이냐, 홍자냐' 같은 질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저희 어머니와 누나들도 물어보세요." 하지만 그는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말을 아낀다"고 했다.
작년 평창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금메달을 받을 때 울려 퍼진 시상식 주제곡, 3년 전부터 육군에서 부르는 군가 '함께 가리라'(일명 신육군가) 등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욕심이 많아 다 하고 싶고, 잘하고 싶다"며 "앞으로 영화음악과 뮤지컬에서도 작업들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