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창조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한 건축이다!"
1919년 4월 바우하우스의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Gropius·1883~1969)의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예술 분야를 건축으로 통합하겠다는 대담한 선언이다. 바우하우스가 남긴 건축 유산을 제대로 보려면 독일 동부 소도시 데사우(Dessau)로 가야 한다.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역사적인 캠퍼스 '바우하우스 빌딩'이 1926년 문을 열었다.
◇직선과 유리, 단순함의 결정체
베를린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달려 데사우에 도착했다. 올해 바우하우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이 도시의 테마도 '바우하우스'다. '100년 바우하우스'가 큼직하게 찍힌 트램이 이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우하우스 빌딩 외벽엔 헤르베르트 바이어가 디자인한 서체로 'Bauhaus' 글자가 세로로 박혀 있다. 성지가 된 건물 앞에서 관광객들이 앞다퉈 기념사진을 찍었다. 4개의 직육면체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공방과 강의실, 학생 기숙사, 교수실, 식당과 공연장까지 필요한 시설을 모두 갖췄다.
전면이 유리로 덮인 외관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유럽에서 일반적이었던 뾰족한 지붕 대신 평평한 지붕에 비대칭적인 평면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의 플로리안 스트로브 연구원은 "직선과 유리, 단순함과 강철 구조, 수직과 콘크리트 등 모든 것이 바우하우스 건축의 결정체"라며 "창의성 실험을 위한 유토피아가 실현된 공간"이라고 했다.
그로피우스는 교수들을 위한 사택도 지었다. 바우하우스 빌딩에서 북쪽으로 800m 떨어진 '마스터스 하우스'다. 바우하우스 빌딩을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소나무 숲 안에 덩그러니 놓인 새하얀 큐브를 만난다. 파사드(건축물의 정면)에 드리운 나무의 그림자가 햇살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졌다. 건물은 모두 4채다. 거대한 창문, 맞춤 설치된 욕실, 접시와 조리도구들이 벽걸이에 정돈된 부엌…. 오늘날 우리가 일상으로 쓰고 있는 붙박이장 부엌의 원조가 이곳에 있었다.
데사우 남쪽 끝에선 바우하우스가 남긴 대규모 주택 개발 단지를 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심각한 주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로피우스는 '퇴르텐 주택 단지'를 세운다. 콘크리트 연결부터 사전 제작된 조립식 부재를 써서 6시간 만에 외피를 완성했다.
버스를 타고 엘베강변으로 이동했다.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레스토랑 '코른하우스'는 바우하우스 순례객들에게 최고의 인기 장소다. 1930년 지은 바우하우스 걸작에 앉아 반짝이는 엘베강을 감상했다.
◇하네스 마이어의 ADGB 노동조합 학교
베를린 북동부의 근교 소도시 베르나우(Bernau)에도 바우하우스 철학을 구현한 건축 유산이 있다. 바우하우스의 2대 교장인 하네스 마이어와 한스 비트버가 1930년 완성한 ADGB 노동조합 학교다. 강당과 기숙사, 사무실, 식당 등 각 건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 파사드 전면을 채운 유리창은 바우하우스 건축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긴 복도는 조합원들의 만남을 만들어내는 소통의 장소였다. 건물을 안내한 안야 구텐베르거씨는 "새 교장이 된 마이어는 그로피우스보다 더 기능성을 강조한 건축가였다. 실용적 접근을 통해 건축의 절제된 미감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 이 건물의 특징"이라고 했다.
[데사우 '10번 버스' 타고 바우하우스 순례하세요]
100년 전 바우하우스의 여정을 따라 전 세계 관광객들이 독일을 찾는다. 바우하우스 14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데사우에는 바우하우스의 주요 건축물을 순회하는 '바우하우스 버스'가 있다. 데사우 메인역에서 10번 버스를 타면 북쪽으로 코른하우스, 남쪽으로 퇴르텐 주택 단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엘베강변을 따라 18세기에 조성한 영국식 정원 뵈를리츠까지 향하는 약 40㎞의 자전거 도로도 필수 코스.
1996년 '바우하우스 건축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바이마르에 3곳, 데사우 3곳, 베를린 근교 베르나우에 한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