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 개발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영국 왕립국방연구소(RUSI)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북 제재로 국제 금융 거래가 막힌 북한이 '가상 화폐 채굴'을 통해 자금을 모으고 이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활용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북한의 자금세탁에 활용됐을 개연성 때문에 미 금융 당국의 '제재'를 받은 해외 가상 화폐 거래소도 나왔다. 이로 인해 국내 가상 화폐거래소인 업비트까지 때아닌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북한, 가상 화폐 채굴로 핵 개발 자금 마련 가능성"

22일(현지 시각) RUSI 연구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 화폐가 WMD 개발을 추진하는 북한에 '재정적 생명줄'을 제공하고 있다. RUSI의 케일라 이젠만 연구원은 "가상 화폐가 국경이 없는 특징이 있어 전통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려는 이들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고 했다. 그는 "많은 양의 가상 화폐가 채굴 작업에서 얻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이 자금이 북한 WMD 프로그램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가상 화폐 채굴로 비핵화 제재를 회피해 전 세계와 거래할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3월 보고서는 북한이 670만달러(약 76억원)에 달하는 비트코인과 기타 암호 화폐를 모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가상 화폐로 무기 개발 자금을 모은다는 의혹은 계속 부인해왔다고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전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가상 화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북한은 18~25일 평양에서 블록체인과 가상 화폐를 주제로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업비트에 불똥

국내 가상 화폐거래소 업비트는 북한 자금 세탁에 활용됐을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북한 계좌 유무를 두고 미국 당국과 진실 공방을 펼치고 있는 현지 가상화폐거래소 비트렉스와 교차 거래가 가능한 유일한 국내 업체였기 때문이다. '교차 거래'는 한국의 업비트 고객이 별다른 절차 없이 비트렉스에 가입한 해외 사용자들과 가상 화폐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만약 비트렉스에 북한 계좌가 활동한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국내 업비트 이용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과 거래했을 가능성이 생긴다.

미국 뉴욕 금융감독청(NYDFS)은 지난 10일 비트렉스가 신청한 '비트 라이선스(BitLicense)' 발급을 거절했다. 비트 라이선스는 뉴욕주에서 가상 화폐 관련 사업을 할 때 필수로 발급받아야 하는 일종의 '영업허가증'이다. NYDFS는 "지난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의 거래 내역 샘플을 조사한 결과, 미국의 금융 제재 대상인 북한과 이란 국적의 계정을 각 2건 발견했다"며 라이선스 발급 거부 이유를 설명했다. NYDFS 관계자는 "우리가 발견한 계좌 외에도 얼마나 많은 북한 계좌가 있을지 모른다"고도 했다.

비트렉스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22일(현지 시각) 비트렉스는 "NYDFS가 지적한 북한 계좌 두 건의 IP주소 등을 확인하니 (북한이 아닌) 한국인이었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회원 가입할 때 국적란에서 '북한'으로 잘못 선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애초에 제재 대상인 북한과 이란의 국적도 선택지에 있는 것도 이상하다"며 "NYDFS도 IP주소를 확인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대해 업비트 관계자는 "제휴사인 비트렉스로부터 북한 계정이 없다고 확인받았다"며 "업비트는 철저하게 사용자들이 북한과 거래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