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연락 없이 방문하실 경우 상담이 어렵습니다.'

24일 서울 서초동 법원 앞 '민변' 사무실 출입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 팻말을 언제 붙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정권 들어 요직을 차지하며 급부상한 민변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실제 한 변호사는 "현 정권 들어 민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맡기려고 민변 사무실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들었다"고 했다. 민변 활동을 하다 그만뒀다는 한 변호사도 "1인당 배상액이 수억원씩 나오는 과거사, 국가 배상 사건 등이 민변에 몰리다 보니 민변 타이틀을 달고 돈만 벌어보려는 변호사들도 민변으로 쏠리는 실정"이라고 했다.

민변은 1988년 51명의 회원으로 출범했다. 인권 운동, 공익 활동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들어 민변 출신들이 최고 사법기관과 법조계 요직에 대거 입성하면서 법조계 '신(新)주류'로 떠올랐다. 대법원·헌법재판소 및 법무부, 각종 위원회 등의 핵심 보직을 줄줄이 꿰찼다. '민변 천하' '민변 전성시대'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올해 설립 31주년을 맞은 민변 회원수는 1200명가량이다. 전체 2만5000명 변호사의 5%에 불과하지만 법조계 핵심 세력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모두 민변 출신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5월 민변 창립 30주년 기념식에 축전을 보내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동반자가 돼주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 인연이 현 정권 들어 민변 출신의 대거 약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사법부의 양대 축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민변 출신들을 앉히기 시작했다. 민변 회장 출신의 김선수 대법관은 최초의 재야(在野) 변호사 출신 대법관이다. 법원도서관장을 지낸 노정희 대법관도 민변 출신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이석태 헌법재판관도 민변 회장을 지냈다. 주식 문제로 낙마했던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민변 출신이었다.

현재 사법부에선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後身)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이 법원 내 요직을 장악하면서 '신주류 세력'이 돼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두 판사 서클의 회장이었다. 그런데 이들과 성향이 거의 비슷한 민변 변호사까지 외부에서 들어와 합세하면서 사법부 '진보 세력'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한 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나 인권법연구회는 사법부 내 조직이지만 민변은 사법부뿐만 아니라 각종 정부 기관이나 위원회에 포진하고 있다"며 "현 정권에서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집단"이라고 했다.

'탈(脫)검찰화'를 추진한 법무부도 민간 출신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민변 출신을 대거 뽑았다. 문 대통령 취임 후 법무부가 임명한 '개방형 비(非)검사직' 과장급 이상 12명 중 절반이 민변 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탈검찰화하려다 '민변화'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각종 법조 관련 기관과 위원회 역시 민변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 민변 출신의 김외숙 법제처장은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설립한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활동했다.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조상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장주영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모두 민변 출신이다.

검찰과 법원 개혁, 각종 과거사와 관련된 '사법 적폐 청산' 작업에도 민변 출신들이 중용되고 있다. 2017년 말 발족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위원장인 김갑배 변호사를 비롯해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김용민 변호사 등 위원 9명 중 6명이 민변 출신으로 채워졌다. 김용민 변호사는 여성 비하 논란을 부른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 재판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대검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의 송두환 위원장, 김수정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소속 후속추진단장도 민변 출신이다. 2017년 8월 발족한 법무부 법무·검찰위원회 위원 17명 중 4명도 민변 회원으로 채워졌다. 이 때문에 민변이 '관변 단체'처럼 변했고, 이들 위원회의 활동도 사실상 민변 입김에 휘둘린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