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 '김해 신공항 확장안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냈던 공항 전문가 장 마리 슈발리에(Chevallier·74·사진)씨가 본지 인터뷰에서 "그때 내린 결론이 맞았다고 확신한다"며 "정치적 입장을 내세워 공항 입지를 선정하는 건 난센스(nonsense)"라고 했다. 그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수석 엔지니어를 거쳐 일본 간사이국제공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국제공항 등 세계 각국 공항 설계 프로젝트를 50건 이상 수행한 세계적인 공항 설계 전문가다. 본지는 파리에 머물고 있는 슈발리에를 26일(현지 시각)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3년 전 정부 의뢰로 1년간 동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용역 연구를 총책임자로 진행한 뒤 "가덕도나 밀양에 공항을 짓는 것보다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게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최근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 공항 검증단은 "(슈발리에 용역 결과를 토대로 한) 항공 수요나 소음 피해 등이 잘못 예측됐다"며 "김해 신공항은 동남권 관문 공항 입지로 부적절하니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가 재차 "오류가 있을 리 없다"고 한 것이다. 슈발리에씨는 "당시 우리는 김해, 가덕도, 밀양을 10차례 넘게 답사하면서 철저하게 경제성 차원에서 검증했다"며 "한국 정부가 작년에 우리 연구를 다시 검증해 본 것으로 아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연구에 실수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발리에씨는 2015년 6월부터 1년간 동남권 신공항 사전 타당성 조사를 지휘했다. 19억2000만원의 예산이 든 정부 연구 용역이었다. 당시 그는 ▲접근성 ▲소음 피해 ▲실현 가능성 등 세 가지 다른 지표로 우선순위를 달리해 시나리오별로 검토한 결과, 모든 경우에 가덕도나 밀양이 아니라 김해공항 확장안이 최적이라고 발표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그렇게 판단한 근거를 조목조목 댔다.
그는 "가덕도는 바다 한가운데에 공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공항이 들어설 만한 입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홍콩처럼 공항을 만들 다른 부지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엔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 다른 대안이 있어 굳이 가덕도를 택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얘기였다. 그는 "가덕도에 공항을 만들려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보다 비용이 세 배정도 드는데 그런 선택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는 3년 전 김해신공항 확장에 4조3000억원, 가덕도 공항을 짓는 데 10조6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밀양 공항의 경우 항공 안전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해 공항을 문 닫지 않는 이상 김해 공항이 국내선, 밀양 공항이 국제선을 담당하는 구도가 될 텐데, 두 공항이 지리적으로 가까워 하늘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며 "관제가 어려운 것은 물론, 자칫 치명적인 항공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다.
김해공항 확장에 대해선 "처음엔 이 방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따져본 끝에 활주로를 일자가 아니라 'V'자로 설치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냈다"며 "한국이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해공항 확장안은 정치적 고려 없이 내린 결론"이라며 "(정부나 지역 여론에)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철저하게 검증했다"고 했다.
슈발리에씨는 "영남권 지역 경제는 충분히 거점 공항을 가질 만큼 성장했는데, 여전히 인천공항에 의존해 성장에 한계를 겪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갈등 때문에 개항이 늦어지면 한국이 입을 손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다. 그는 "한반도 동남권에 빠른 시일 내에 허브 공항이 들어서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 지역이 나머지 세계와 연결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올 상반기 김해공항 기본 계획 고시를 마무리하고 2026년까지 신공항 개항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여당 소속 부산시장·울산시장·경남지사 등이 사업 백지화를 주장하고 나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슈발리에씨는 "내년까지 김해 신공항 기본 계획 수립을 끝내더라도 구체적인 공항 설계에 2년, 공항 건설에 5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며 "정치적 갈등 때문에 공항 계획 수립이 지연되면 그만큼 개항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간 2030년이 돼서야 개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시 슈발리에씨가 진행한 조사가 워낙 꼼꼼하고 정교해 연구를 발주한 우리 정부가 많이 배웠다"면서 "앞으로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이 낸 주장과 슈발리에의 보고서를 상호 검증해보겠지만, 부·울·경 검증단이 슈발리에보다 더 정확한 분석을 내놓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장 마리 슈발리에는
세계 3대 공항 설계 회사로 꼽히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수석 엔지니어를 지냈다.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국제공항 등 세계 각국의 공항 디자인·설계 프로젝트를 50건 넘게 수행했다. 한국과 관련해 동남권 신공항 연구 외에도 인천공항 입지 선정·공항 설계,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 연구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