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이 하나를 품고 산다. 개인의 내면에 덜 자란 모습으로 꼭꼭 숨어 있는 '내 안의 어린이'다. 내 안의 어린이를 위해 아이들 마음을 기똥차게 읽어내는 어린이책 마니아들에게 물었다. 이번 어린이날에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함께 읽으면 좋은 어린이책은 무엇입니까? 동화작가 황선미 서울예술대 교수, 바람의아이들 대표 최윤정, 그림책 평론가 이상희, 동화작가 임정진, 아동문학 평론가 김지은이 추천했다.

황선미 동화작가·서울예술대 교수

―오늘은 다 잘했다
―안녕, 나의 등대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

지금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젊은이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어린이는 너무 일찍 버거운 짐을 지느라, 노인은 곁이 쓸쓸해서, 다들 괜찮은 척 오도카니 서 있을 때가 많지 않은가. 독서는 우리 내면을 든든히 해줄 참 좋은 에너지다.

성명진 동시집 '오늘은 다 잘했다'(창비)를 읽고 나도 모르게 가슴에 꼭 안았다. 읽는 내내 가슴이 그득해지고 미소가 절로 나오고 누군가를 '이토록 다정하게 솔직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 책. 손이 잘 닿는 책꽂이에 뒀는데 벌써 세 사람이나 빌려다 읽었다.

'안녕, 나의 등대'(소피 블랙올 글그림·비룡소)는 단조롭고 막막한 바다를 대상으로 한 시기를 책임감 있게 살았던 등대지기의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자리에서 묵묵히 존재했던 아버지라는 이름. 그리고 오래전 비를 맞으며 바라보았던 페기스코브의 빨간 지붕 등대가 떠올랐다. 거기서 나는 나에게 엽서를 한 장 썼더랬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카프카와 인형의 여행'(조르디 시에라 이 파브라 지음·문학과지성사)을 지침서처럼 꺼내본다. 살면서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멋진 상상력으로 치유를 도모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의사 이상의 역할이다.

최윤정 바람의아이들 대표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아무도 모르는 색깔
―땋은 머리

누구나 가슴속에 새 한 마리가 산다.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고 싶은 새가.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사라 룬드베리 글그림·산하)는 스웨덴 화가 베타 한손(1910~1994)이 여성 화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툭툭 던져진 글과 풍요로운 그림이 마음을 파고든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좌절하고 극복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여리면서도 동시에 강한 수채화가 내 안에 묻어둔 새를 깨우는지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댄다.

현실의 아이들이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 모험을 겪는 '아무도 모르는 색깔'(김혜진 지음·바람의아이들)에는 '우리가 사는 곳이 왜 불완전한 세계인가?'라는 질문이 전편에 흐른다. 주인공이 괴물을 물리쳤을 때 발견한 건 무서워서 울고 있는 아주 어린 아이였다. 폭력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공포임을 마음 아프게 보여주던 그 구절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한다.

'땋은 머리'(정미진 지음·엣눈북스)는 글과 그림이 놀랍도록 잘 어우러져 있다. 할머니와 손녀의 유년이 만나고, 생로병사를 통해 인간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가 풍부한 일러스트레이션 속에 두 겹으로 펼쳐진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그림이 할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그 딸의 딸의 딸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고 순환하는 사랑을 잘 해석해낸다.

이상희 그림책 평론가

―강이
―바닷가에는 돌들이 가득
―나무가 자라는 빌딩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는 것은 첫 마음이 되어 다시 믿고 사랑하기를 시작하는 일이다. 크로키 그림이 근사한 '강이'(이수지 그림책·비룡소)를 읽으면 새삼 그 확신이 뚜렷해진다. 철창에 갇혀 있던 검은 개는 우여곡절 끝에 '산'과 '바다' 두 아이네 식구가 되고, 인디언식 이름 '강'을 얻는다. 사랑하는 이를 믿고 다시 시작하고 싶게 만드는 명작이다.

그림책 '바닷가에는 돌들이 가득'(레오 리오니 지음·보림) 역시 세상의 처음, 첫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컴퓨터 이미지가 아닌, 예술가의 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공들여 그려 건네는 돌만 가득하다. 이 원시 자연물을 들여다보면서 그 다양한 우주적 생김새와 서늘한 원초적 질감을 체험할 수 있다. 먼지바람 저편의 맑고 밝은 대자연에 몸과 마음을 잠그고 자맥질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서양화가 윤강미의 첫 그림책 '나무가 자라는 빌딩'(창비)은 미세 먼지를 걱정하며 회색 빌딩 숲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꽃과 나무 그득한 세상을 그리는 미래 판타지다. 꽃나무가 창문 바깥까지 뻗어나가는 빌딩, 낯설고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정원, 사람과 동물과 로봇이 함께 가꾸는 식물연구소 등 세련된 색채와 매력적인 식물이 가득한 유토피아는 미래에 대한 긍정의 대안으로 다가온다.

임정진 동화작가

―믿기 어렵겠지만, 엘비스 의상실
―돌 씹어 먹는 아이
―조선 축구를 지켜라

'믿기 어렵겠지만, 엘비스 의상실'(최향랑 지음·사계절)에는 하고 싶은 게 많은 개구리와 그 개구리 집에 세들어 사는 '나'가 등장한다. 나는 개구리의 요구대로 옷을 만들어주다가 결국엔 개구리의 집을 상속받는다(부럽다!). 저자는 실제로 애완 개구리를 9년이나 키웠다 한다. 꽃목걸이로 장례를 치러준 사진도 보여줬다. 꿈을 이뤄가는 인생 옆엔 꿈을 응원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송미경 동화집 '돌 씹어 먹는 아이'(문학동네)는 아무거나 먼저 읽어도 좋을 종합 선물 세트다. 자신의 상처를 숨기느라 삶을 건강하게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 이야기인 '돌 씹어 먹는 아이'는 상징적 요소를 통해 상상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극찬한다. '나는 과연 좋은 부모인가?' 반성해야 할 어린이날에 어울리는 작품은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다.

'조선 축구를 지켜라'(조경숙 지음·청어람주니어)는 역사와 스포츠가 한 번에 나온다. 1928년 전일본종합 축구선수권대회에서 경성축구단이 우승을 하자 식민지 설움을 겪던 조선인들은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일본은 축구 통제령을 내리려 한다. 일제강점기에 도포 입고 갓 쓰고 축구 했던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겠지만, 역사적 사실이 토대여서 축구 팬들은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되리라.

김지은 평론가

―사자왕 형제의 모험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워터십 다운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창비)은 영원한 용기에 대해, 끝없는 사랑에 대해 믿음을 버리지 않기에 살아 있는 고전이 됐다. 칼과 요나탄 형제는 독재자의 폭압으로 짓밟힌 과거의 산과 강을 넘어 서로 돕는 즐거운 세상으로 가는데, 둘은 꽉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희망은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알려준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1·2'(휘스 카위어 지음·비룡소)는 열한 살 여자아이 폴레케를 둘러싸고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갈등, 그리고 사회안전망의 붕괴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유머러스하고 은유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문득 다가온 사랑의 순간이나 예기치 않은 삶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문학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워터십 다운'(리처드 애덤스 지음·사계절)은 열한 마리 토끼의 생생한 모험을 담은 판타지 걸작이다. 어린이에게는 자연의 신비와 모험의 가치를, 청소년에게는 동행하면서 성장하는 벅찬 감정을, 어른에게는 험난한 인생의 경로와 의미를 일러준다. 토끼들은 인간이 현재와 같은 모습이어서는 결코 그들이 원하는 인간성을 가질 수 없다고 통렬하게 단언한다. 시야 없이 질주하는 일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섬세한 묘사에 경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