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추정)을 발사한 4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가 40분 만에 '단거리 발사체'로 번복했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북한이 쏜 발사체가) 미사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외부 도발보다는) 내부 결속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이 아닌 방사포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여당이 일제히 북 도발 수위를 낮춰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하루 만인 5일 탄도미사일 발사로 추정되는 장면을 포함한 사진 10여 장을 공개하면서 정부는 곤혹스러운 입장이 돼 버렸다.

청와대는 북한 도발 때마다 열렸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 않았고, 한·미 정상 간 통화도 추진하지 않았다. 발사 6시간여가 지난 다음에야 "대화 재개에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는 애매한 입장을 냈다. 1년 6개월 만의 북 미사일 도발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지 않고 '로 키(low key)'로 가야 북한과 대화 및 남북 관계 개선 조치를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 미사일 도발 의미 애써 축소

북한이 강원도 원산 북방 호도반도 일대에서 발사체 수 발을 발사한 것은 지난 4일 오전 9시 6분이다. 우리 합참은 오전 9시 24분 "북한이 불상(不詳) 단거리 미사일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며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한·미 당국이 분석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40여 분 뒤인 10시 5분 합참은 "북한이 불상 단거리 발사체 수 발을 발사했다"고 정정했다.

군 당국이 뒤늦게 '미사일'을 '발사체'로 번복한 것을 두고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그래서 대북(對北) 제재가 더 강화될 수 있다. '비핵화 협상판'을 깨지 않기 위해 청와대가 군에 정정 발표를 하도록 조치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합참 관계자는 "발사 직후엔 신속한 정보 제공을 위해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후 정확한 재원 분석이 필요하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표현을 바꾼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발사체의) 고도가 높지 않고 거리도 많이 나가지 않아 미사일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보고했다. 야당 관계자는 "'아직 분석이 안 됐다'면서 어떻게 미사일이 아니라고 단정했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날 NSC 회의 대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참석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잇따라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NSC 전체회의를 주재해 "분노"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고 한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청와대는 북한이 도발한 지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 30분에야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 간 9·19 군사 합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북한 도발에 사용됐었던 '규탄' 등의 표현은 없었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도발이)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깰 정도는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가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결론이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북한이 쏜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의 사거리는 280~500㎞다. 사실상 한국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우리를 목표로 한 미사일 도발인데 정작 정부는 항의 대신 '수위 낮추기'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北이 '미사일' 공개하자 당황

국방부는 5일 오후엔 '발사체'를 '신형 전술 유도 무기'라고 또다시 명칭을 바꿨다. 북한이 이날 관영 매체를 통해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하면서 '신형 전술 유도 무기'라고 표현하자 그대로 받은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 스스로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하자 그간 '발사체'라고 주장해왔던 군과 정보 당국이 머쓱해진 상황"이라고 했다.

군은 이날 대외적으로 여전히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남북 관계 개선에 차질이 생길까 봐 일부러 '축소 해석'을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 당국이 정확한 결과를 내놓기 전까지 섣부른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