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 영상, 상처 인증샷...SNS 통해 확산
중·고등학교 한 반에 3명은 자해 경험 有
사실상 손 놓은 SNS… 정부 "인력 부족"
전문가 "정부·기업 함께 강력 규제해야"
지난달 24일 자신을 2001년생이라고 소개한 트위터 사용자 A(18)씨는 자해(自害) 상처 인증샷 4장을 올렸다. 핏자국이 선명한 사진에는 ‘#자해 #자살 #우울증 #자해일기’ 등의 해시태그도 함께 달았다. 지난달 23일부터 12일까지 20일 동안 A씨가 올린 자해 사진과 영상은 총 19개. 소셜미디어에는 이들 모두가 무분별하게 노출돼 있었다.
지난해 9월 21일, B(11)양도 유튜브에 자신의 자해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은 7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런 제재 조치 없이 여전히 공개돼 있다. 이미 조회수는 3300회를 넘겼다. 영상에는 "나도 자해하고 싶다. 아프지 않나" "부탁한다. 자해를 그만해 달라" 등의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이해받고 싶어하는 욕망 때문에 청소년들이 자기 고통을 또래들과 공유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늘어나는 '자해러'와 '자해계'...중학생 100명 중 8명 자해 경험
최근 자해 관련 영상과 사진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 문제는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상에 올라온 자해 영상 대부분을 청소년이 올렸다는 점. 이들은 별다른 인증절차 없이 SNS를 통해 끊임없이 자해 콘텐츠를 생산, 소비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학생 51만4710명 중 4만505명(7.9%)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등학생의 경우 45만2107명 중 2만9026명(6.4%)이 자해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한 학급(30명 기준)당 2~3명은 자해 경험이 있는 셈이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 자료에도 청소년 자살·자해 시도자 수는 매년 2000명이 넘는 것으로 나와있다.
청소년들은 SNS를 통해 서로 공개적으로 자해 정보를 공유한다. 실제 자신을 10대라고 소개한 한 청소년이 유튜브에 "자해 흉터 부모님께 걸렸을때 대처법을 알려달라"는 게시글을 올리자 "가려워서 긁었다고 해라" "상처 분장이라 변명해라" 등 답변 수십 개가 달렸다. 이들은 자해하는 사람들을 ‘자해러'라고, 자해 게시물을 올리는 SNS 계정을 ‘자해계’라 부른다.
일선 교사와 학생들은 SNS의 자해 정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기 남양주 모 중학교 교사 박모(31)씨는 "이전부터 자해하는 청소년은 늘 있어왔지만, 최근들어 마치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해를 하는 것을 넘어서 유튜브 등을 통해 서로 자해 방법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의 고교 2학년 박진호(17)군은 "자해 영상 등이 SNS에 자주 노출될 경우 청소년들이 보고 따라할 위험성이 있을 것 같다"며 "일부 스트레스 등의 취약한 청소년들이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자해를 우선적으로 떠올릴까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중학생 신모(15)양은 "한편으론 이들이 정말 힘들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 청소년들에게 부적절한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구멍뚫린 SNS 규제…전문가 "모방 우려, 자해 콘텐츠 엄격 제재해야"
중앙자살예방센터에 따르면, 자해·자살 관련 정보 10건 중 7건은 SNS를 통해 유포된다. 하지만 SNS 업체들은 자해 영상을 허용하지 않는 게시 정책을 마련해 놓고도 사실상 게시물 삭제 등 적극적 조처에는 손을 놓고 있다. 일부 게시물에 '이 동영상은 일부 사용자에게는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뜨지만, 영상 시청 자체를 막지는 않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역시 관련 게시물을 볼 수 없도록 경고문이 뜨지만, '계속하기'를 누르면 그대로 노출된다.
이에 대해 유튜브 측은 "정책적으로 자해를 조장하거나 충격 또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며 "사용자들이 신고한 콘텐츠를 담당 팀이 리뷰하며,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판단된 콘텐츠는 삭제된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5일부터 기자가 문제가 되는 자해 콘텐츠 여러 건을 신고했지만, 일부 게시물에 대해 "커뮤니티 가이드를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 대응도 역부족이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매체환경보호센터에서 자살·자해 조장 콘텐츠 유통 확산을 감시하고 있지만 전담인력은 14명에 불과하다. 센터 관계자는 "꾸준히 유해 사진·동영상을 감시해 관련 SNS 업체에게 자율규제를 요청하고 있다"면서도 "사실상 직원들이 모두 모니터링 업무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 상의 모든 게시물을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으로 자해 관련 사진과 영상을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홍진 센터장은 "또래들에게 이해받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자해 콘텐츠는 모방심리가 강한 청소년뿐 아니라 전 연령에게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국내에서 수익을 거두는 소셜미디어 기업과 정부 모두 책임감을 갖고 자해 콘텐츠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NS자살예방감시단의 유규진 단장은 "자해 콘텐츠 규제의 필요성은 동의한다"면서도 "무작정 소셜미디어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것을 넘어서 정부 차원의 전문 상담진을 활용해 왜 아이들이 자해를 하게 됐는지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