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갈 순 없어."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이 연극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이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작자는 대체 누구인지, 왜 그는 내일은 온다고 해놓고 끝내 오지 않는지. 덕분에 관객은 3시간 가까이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주고받는 맥락 없는 대화를 잠자코 견뎌내야 한다. 사건이라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포조'란 사내와 그의 하인 '럭키'가 벌이는 잠깐의 소동, 그리고 "고도 아저씨가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더라"고 전하는 소년의 등장이 전부. 그럼에도 극을 지켜보던 관객은 어느새 이들과 같은 심정으로 고도라는 미지의 존재를 기다리게 된다.
지난 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국내 초연 이후 반세기 동안 쌓아온 저력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무대 장치는 황량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에스트라공의 낡은 구두, 그리고 밤이 되면 떠오르는 보름달이 전부지만 이 연극은 어떤 화려한 공연보다도 밀도가 높았다.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그 공백을 사소한 일상과 의미 없는 말들로 채워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기승전결, 인과관계 뚜렷한 어떤 연극보다도 우리 인생과 닮아 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말들 속 "우린 늘 무언가를 찾아내지? 그래서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블라디미르) "이 세상의 눈물엔 변함이 없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포조)와 같은 대사가 마음을 파고든다.
정동환(블라디미르)·박용수(에스트라공)·김명국(포조) 등 이 작품과 오래도록 함께해온 배우들은 이번에도 무대 예술의 존재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1막 초반만 해도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하던 객석은 배우들의 리듬감 넘치는 대사와 몸놀림에 익숙해지자 점차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쉽지 않고, 보고 나서도 '그 연극 봤다'고 감히 말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설사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6월 2일까지.